Ideal Horizon

Blog Info

  • About
  • Chatroom
  • Weather · Calenda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감상/네타] ef~a tale of memories 11화 - 치히로의 결의에 관한 소고

2007. 12. 28. 01:25이야기들/애니메이션 이야기

치히로의 심경

 

1. 소설의 결말


치히로 편이 원래 그랬지만, 이번 화는 정말로 몽환적인 장면이 강했습니다. 그만큼 연출도 좋았고 장면에 극적으로 몰입시켜주었지요. 하지만 거기서 나온 한 소녀의 마지막 결론은 아마도 시청자 대다수가 원하지 않았던 것일 터입니다.


11화에서 치히로가 쓴 소설 결말부를 보면,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림 속의 두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림 속 두 사람은 즐겁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림이 흐릿해졌다. 세계 그 자체가 일그러지고 있다.'

'여자 아이에게 신기한 감정이 싹텄다'
'그 감정은 형용할 수 없었다'

'그림 속 두 사람은 웃고 있었다'
'그것만을 느낀다.'


'그녀는 그림을 다시 그렸다. 몇번이고 다시 그렸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림에 자신을 그려넣어 '두 사람의 생활'을 완성시켰을 때 갑자기 그림이 흐릿해졌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그림을 다시 그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했지요. 왜일까요?


답은 '눈물'입니다. 그녀는 두 사람이 함께 함으로서 행복을 느끼고 있는 그 그림을 보고서 여태껏 모르던 감정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처음 겪는 감정은 형용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녀가 '슬픔'이라는 그 감정의 정의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녀가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다'라는 글을 읽고 자신의 세계-그림-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사실은 '고독'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슬픔'은 몰랐을 터겠지요. 단지, 같이 놀 사람이 생기는 '즐거움'만을 생각했을 터입니다.


하지만 막상 그림을 완성시키고 두 사람의 풍경을 완성시키니, 그 즐거움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림 안에 있는 자기 상상의 기대에서만 존재할 뿐. 그러니까 그녀자신은 즐거움을 손에 넣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 남은 것은, 즐거움에 대한 기대의 반향에 의한 '슬픔'뿐이었지요.


하지만 혼자만 있기에, 그 감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슬픔을 해소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겠지요. 단지 남는 것은 허무 뿐입니다. 그녀가 기대했던 모든 것이 의미를 잃고 단순한 '쓰레기'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소멸하고, 마침내 그 원인인 자신까지 버립니다. 무로 돌아감으로서 '슬픔'을 제했습니다.


붕괴하는 심리 소녀의 삶

 

이미 예전화에서, 치히로에게 있어서 글이란 단편적인 자기자신을 계속 이어나가는 '삶의 수단'이라는 말이 언급되었습니다. 또한 치히로 자신은 소설쓰는 것을 자신의 꿈이었다고 말하지요. 사실 치히로는 소설을 쓰면서 동시에 자신이 가진 하나의 '고뇌'이자 '소망'을 투영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소설에 결말을 지었다는 것은, 자신의 '소망'에 대한 결론을 나름대로 정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치히로의 결론


치히로의 말에 의하면 그 소설의 주인공은, 치히로와 렌지의 관계 그 자체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즐거움을 기대했던 결과, 상처받는 한 소녀 말입니다.


소녀가 완성한 그림 => 렌지와 치히로가 바라는 정상적인 두 사람의 관계

혼자일 뿐인 소녀    => 마음대로 움직이지만 결코 바라는 건 이룰 수 없는, 명백한 한계를 지닌 개체


그녀가 처음 생각했던 소설의 결말은 '소녀가 그림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남자가 현실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희망적인 결말이지만, 현실도피적인 것이기도 하며 첫째 엔딩은 어떤 의미에서 소녀가 '망가져버렸다'는 암시가 된다고도 했지요. 두번째는 아예 가망이 없군요.


그렇습니다. 치히로와 렌지는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앞을 걸어왔습니다. 렌지는 계속해서 치히로를 떠받치고 있었고 치히로는 계속해서 '설정되어 있던 관계'를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즐거웠습니다. 서로 가까워지고 완성될 '소망'에 힘입어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결국은, '13시간에 묶인 관계'라는 정해진 한계를 실감합니다. 렌지는 계속되는 치히로의 순환 앞에서 상처입어갑니다. 치히로도 자기자신을 잊고 재현하는 행동을 반복하면서 점차 불안해져갑니다.


렌지에게 고민을 말했던 9화의 치히로는 마침내 현실을 인식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천천히 망가져가고 있었던 겁니다. 그들이 바라지 않더라도 13시간이 반복되면서, 그 사슬에 묶여있는 두 사람의 관계는 '그림'처럼 되기를 바라는 '소녀'의 허무한 발버둥과 같이 의미가 퇴색할 것입니다.


숨겨진 결의 왜곡

 

왜냐하면 그들이 소원으로서 가정해놓은 '정상의 관계'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그것은 일그러진 달의 풍경처럼, 기만의 관계입니다. '행복'으로 위장한 상처와 불안이 그들에게 언젠가 슬픔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무의미하게 되버립니다.


그렇기에 이 '그림'에 대한 결정권한이 있는 '신'은 마침내 하나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화. 자기희생. 지금의 자신을 제물로 하여 더 이상의 왜곡을 막는 결론. 원점으로의 복귀.


아마도 처음의 치히로, 즉 렌지와 소설을 촉매로 하여 인연을 맺기시작했을 때의 그녀는 '인어공주'의 이별을 필연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것이 렌지와의 관계를 지속하면서 희망으로 바뀌어 오히려 '신데렐라'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치히로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소설 속에서 '그림'이 수행했던 역할처럼, 여태까지의 자신들의 관계를 의미하는 '소설'을 완료하고 '꿈'을 이룬뒤 서로를 위해 원점으로 복귀하는 것. 무로 돌리는 것.


지금까지의 관계를 남겨진 한 사람에게 추억으로 남긴 채 이제까지 교류해왔던 자신은 사라지자고, 그렇게 함으로서 망가지는 것을 방지하자고 결의했을 것입니다.  



3. 최종적인 결심의 계기


치히로가 과연 언제 결심을 굳혔을까요. 그 답은 9화에 있습니다.


상황인식 한계자각

 

그녀가 다시 렌지와 함께 있으며 기대에 찰 때, 조금 불안한 점을 토로합니다. 기억이 사라질 때마다 매번 죽고있는가 하는 질문이었지요. 거기서 렌지가 아니라고 했을 때 치히로는 기쁜 듯 그를 봅니다. 하지만, 그때 렌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요. 즉, 렌지는 무의식적으로, 이제 예전의 치히로는 없다고 인정하고 있었던 겁니다. 치히로는 그의 눈물을 보고 이 사실을 깨달아 어두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렌지는 부정하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서, 그대로 관계를 지속한다면 마침내 렌지가 망가질 것이라고, 그녀는 판단했던 겁니다. 아마도 이때, 그녀는 예전부터 고민하고 있었던 선택지인 '지금의 관계를 끝내는 것'을 마침내 결심했겠지요.



4. 치히로의 결의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


렌지는 치히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너무 어렸던 것 같습니다. 작중에서 드러나듯 너무 이상주의자였던 거지요. 그러니까 '현실'에 상처를 입는 겁니다. 치히로는 13시간이라는 '현실'에 묶여있고 렌지는 '이상'을 바랍니다.  


어쩌면 전편의 케이와 히로노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죠. 남녀배치는 바뀌었지만요.


'현실 속에서 계속 그런 관계를 지속하다가는 상처입히고 만다. 그러니까 결정을 해야한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버려지는 것이다.'


유우코가 히로노에게 했던 조언입니다.


히로노가 케이를 놓아줬듯, 치히로는 렌지를 놓아주려고 했습니다. 다만, 치히로가 히로노와 다른 점은 고려의 대상이 조금 다른 종류였다는 것. '선택'보다도 '희생'의 성향이 더 크다는 것.


희생

 

13시간마다 죽는 거나 다름없는 그녀가, 무의미한 삶속에서 꿈을 이뤄내고는 처음으로 의미있는 죽음을 맞이하려 결심한 겁니다. 그리고 희생한 후에도 변함없이 새로운 그녀가 다시 태어나겠지요.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아직 치히로와 렌지는 완전히 이별한게 아닙니다. 이별을 고해 버려진 치히로는 렌지와 함께 꿈꾸던 치히로입니다. 현실의 치히로는 남아있지요. 그리고 렌지가 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치히로를 렌지가 어떤 결론으로 대할지에 관한 문제가 남아있는 겁니다.


'이대로 끝낼 것인가?'


즉 렌지와 치히로의 관계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단지 한 '가능성'이 끝났을 뿐입니다. 신데렐라가 시간의 한계로 왕자와 이별했어도, 기회는 다시 돌아왔었던 것처럼.


두 사람의 추억 잊혀져가는 추억

 

덧붙이자면 유우코-수수께끼의 소녀-가 미야코에게 조언할 때 '자신과 닮았다'고 했죠. 히무라도 렌지와 치히로에게 '닮았다'고 했습니다. 즉, 유우코는 잊혀지는 존재로서, 히무라는 잊어버리는 존재, 동시에 그 반대의 관계. 이건 ef의 세계관과도 관련된 것 같으나 게임후편도 다 나오질 않았으니 생략하죠.


단, ef원작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유우코와 히무라의 에피소드가 될터인데 그 앞에 있는 히로노나 렌지의 에피소드는, 유우코와 히무라의 에피소드를 이루기위한 일종의 열쇠가 되어줄겁니다. 원작의 처음에 밝혀지지만, 유우코와 히무라는 재회에 성공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미야코가 해피엔딩으로 끝났기 때문에 치히로 쪽도 뭔가 해결되는 엔딩이 되어야한다고 봅니다.


실제로 미야코를 선택한 히로노가 완전히 버림받았나요. 결국 케이와 옛 관계로 회복하기로 합니다. 그것처럼 치히로도, 비록 기존의 망가져가는 '연인'의 관계는 버렸어도, 어떤 형태로 구현될지는 모르나 렌지에게 버림받지는 않겠지요. 서로가 루프를 계속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PS1.

애니메이션의 각화 부제의 첫글자를 모아보면 'euphoric fiel(d)'가 됩니다. 방영분 마지막이 'l'이니까 아직 'd'가 남는 셈이지요. 이건 DVD에 추가될 내용이 있다는 걸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13화 방영분 보니 에필로그로 'd'를 붙여놨군요. 이건 생각치도 못했습니다.


PS2.


본래 원작은 1장(히로노&미야코&케이),2장(쿄스케&케이),3장(렌지&치히로),4장(쿠제&하야마)를 본편으로 삼으며, 서장과 종장의 메인인 유우코와 히무라가 이들 본편을 이야기함으로서 하나의 결말로 이끌어내게 됩니다. 서로를 잊어버리고 있는 유우코와 히무라가 각각의 커플을 보면서 서로를 기억해내어 재회를 완수한다는 이야기죠. 참고로 3, 4, 종장이 수록된 후편은 08년5월30일 발매예정이라니 아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