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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본주의 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2021. 1. 9. 21:55이야기들/사회·문화 이야기

2000년대 금융위기 이후 국제 경제는 아무리 시중에 돈을 쏟아 부어도 인플레가 일어나기는커녕  실물 경제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 사후경직 상태에 빠져 버렸다. 자본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를 지탱했던 경제학 이론들이 의미를 잃고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으로 몰락하고 있는 가운데 시중에 흘러든 유동성은 자산 시장 거품만을 일으키며 경제 구조를 뿌리채 흔들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 같은 사상 초유의 모순이 등장하고 모든 분야의 경쟁 시장들이 제로섬 게임으로 변해 가며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되기만을 지속한다.


어려워 보이는 문제지만 이렇게 되어 버린 이유는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경제 발전 역사가 앞선 선진국들에서 3차 산업 발달 및 산업 공동화가 진행됨에 따라, 2000년대를 기점으로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가 완전히 변화했기 때문이다.


자본이란 단순히 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수단을 뜻한다. 생산 수단이라고 하면 전통적으로는 공장이나 기계 같은 것을 떠올릴 것이다. 그것이 20세기까지의 자본주의 경제를 이끄는 주류였다. 금융은 그 대부분이 교환 수단과 가치 저장의 역할, 즉 물리적인 생산 수단들을 돌리는 혈액 정도 의미에 불과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점차 금융 경제가 직접적인 가치 생산 수단으로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른바 금융 공학의 출현이 그 변곡점이었을 것이다.


물리적인 생산 과정 없이 돈만으로 가치를 불리는 금융 경제는 기존 실물 의존 경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본주의의 판도를 바꿔 버렸다. 금융 시장이 실물 경제와 동떨어진 독립적인 자산 영역으로 자리잡으면서, 이제는 돈 자체가 생산 수단이 되었다. 실물 투자와 생산 판매라는 변환 과정 없이도 돈으로 돈을, 자산으로 자산을 낳게 할 수 있다. 그 결과 금융은 더 이상 본래 목적인 가치 교환 역할을 다할 수 없게 되었다.


생산에 필요한 기계를 당장의 끼니를 위해 엿바꿔 먹으려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돈 또한 그렇게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이쯤 되면 왜 시중에 돈을 아무리 풀어도 국제 시장에서 인플레가 일어나지 않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시중에 풀린 돈은 자본으로 투입되고 있다. 하지만 금융 경제가 실물 경제보다 더 장래가 유망한 선진국이 국제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돈은 실물이 아닌 금융 형태의 자본에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돈이 가치 교환 수단이 아닌 창출 수단으로 변질된 시점에서, 돈을 쌓는 것 자체가 생산 수단을 확충하는 행위가 된다. 그리고 금융 공학의 발달과 비교 우위의 이동으로 실물 경제보다 금융 경제의 자산 시장에서 더 큰 레버리지를 확정적으로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봐도 실물 경제에서 새로 창업하거나 투자를 하기보단 돈 그 자체를 생산 수단으로 삼는 것이 더 매력적이다. 결국 이것이 바로 뉴 노멀의 실체이자 투자할 돈이 회전하지 않고 묶이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의 정체인 셈이다.


현재 선진국 실물 경제 중 유일하게 금융 경제에 맞먹을 잠재력을 보이는 부문은 IT 산업 중 극히 일부 영역이다. 그러나 IT는 태생적으로 기술이 발전할수록 독점과 독식으로 기울 수밖에 없어 진입 장벽이 높다. 그러니 부동산이나 기존 기업들의 주식과 같은 자산에 돈이 몰리고 그것도 모자라 암호 화폐 같은 새롭고 불안정한 자산 시장까지 돈이 몰린다. 심지어 자산 시장에서 당장 이익을 얻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다음 기회를 위해 생산 수단으로서 돈 그 자체를 온존, 즉 저축하려 하지 실물 경제를 돌릴 동기를 찾지 못한다. 


결국 이는 자본주의의 태생적 귀결이라 해야 할 것이다. 생산 요소로서 토지에 묶여 있던 자본이 산업 혁명으로 별개의 독립된 영역이 된 이래 모든 것을 자본화하기 시작한 것이 더 이상 먹이를 찾지 못해 교환 수단까지 집어삼켰다. 실물 경제가 주도하는 자본주의는 막을 내려 자산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 끝에 있는 것은 독보적인 금융 및 기술 역량으로 현상을 유지하는 일부 일등 국가들이 독점해 버린 실물 경제와 발빠르게 보금자리를 옮긴 소수의 자산 지배자들, 그리고 그 자산 지배 계급으로부터 버림받은 대다수 열등 국가들이 거기 남은 무산 계급과 함께 끝없이 붕괴해 가는 시대의 도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