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23. 14:28ㆍ이야기들/애니메이션 이야기
2019년 1분기 방영 신작 애니메이션들도 이제 본궤도에 오른 시점입니다만, 언제나 그랬듯이 1화 때의 인상을 그대로 끌고 가는 부류가 있는가하면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상당히 다른 느낌을 보여주는 부류도 보입니다. 대부분의 방영작들이 초두효과를 얻기 위해 1화에 비교적 많은 힘을 쓰기 때문에 1화와 인상이 달라진다는 것은 대개 평가가 하락하는 경우가 많지요. 여기에는 개인적으로도 많이 당해봤고, 많은 시청자들이 남기는 반응을 봐도 1화만 같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중에는 드물게도, 1화의 인상보다 이후의 이야기가 더 흥미를 끌고 흡인력을 발휘하는 방영작 역시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인데, 이럴 때는 시청을 관두지 않은 것에 대한 보상 비슷한 느낌과 함께 묘한 기대감이 커지기도 합니다. 다행이라고 할지, 이번 분기에 이런 사례에 해당될 법하면서 흥미를 끄는 애니메이션이 있어서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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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클릿 프린세스는 미래 증강현실 기술을 소재로 한 스포츠물 계열의 애니메이션으로, 가상현실을 통해 여러 무기를 사용하는 격투를 직접적인 타격 없이 구현하는 스포츠와 이에 도전하는 여고생들의 부활동을 중심으로 그린 TV 애니메이션입니다. 근래 유행하는 가상현실 기반 게임물과는 달리 전자오락보다는 스포츠 요소에 비중을 두어, 최첨단 IT기술이 적용된 무대라는 점만 빼면, 종래의 격투대회물이나 스포츠대회물의 플롯을 다소의 부활동 요소와 더불어 충실히 따르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지요. 다소 가벼운 느낌으로, 스포츠 선수의 길을 택한 주인공이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라고 정리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작중 배경은 누구라면 한 번쯤 상상해볼만한 일상적인 미래 사회입니다. AI가 알아서 프로그래밍 코드를 최적화시켜줄 정도로 발전한 IT기술을 통해 바깥에선 홀로그램들이 반겨주고 시민들은 뇌파를 통해 소형화된 컴퓨터를 조작하며 모든 일상에서 사물인터넷이 유용하게 활용되는 가운데 e-스포츠가 제대로 자리를 잡은, 현대사회의 순전한 업그레이드판으로서 있을 법한 미래상이지요. 그런 세계에서 우연을 계기로 자신의 숨은 재능을 꽃피울 분야로서 e-스포츠를 발견해 진로를 정하고 도전하는 정석적인 주인공의 어찌 보면 고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상과 활약이 펼쳐지는 동시에 그런 주인공과 함께 하는 주연들의 이러저러한 사연들이 비춰지면서, 그 우여곡절이 얽히고 설켜 고난을 극복하고 목표를 성취해가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본래 서클릿 프린세스는 그 스폰서에서도 알 수 있듯 DMM GAMES가 2019년부터 서비스할 캐릭터카드배틀계 모바일 게임이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은 그 게임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것입니다. 베타테스트 후 2년 동안 점검 중이라는 악명이 있을 정도로 아직 게임이 제 궤도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TVA는 물론 앞서 만화 및 소설로도 미디어믹스가 이루어진 것을 볼 때 나름 홍보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으나 이쪽 업계가 성공하기 참 힘들어서 그 운명은 미지수지요. 특히 모바일 게임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선 근래 모바일 게임 기반 TVA들이 절반쯤 망가진 느낌을 보여준 사례가 많았기에 PV상으로 딱히 퀄리티가 특별할 것 같지도 않았던 이 애니메이션에 대해 기대치를 높게 가질 이유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때문에 1화가 방송될 때만 해도 여기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관심을 완전히 끊지 않았던 것은 주연 성우 중에 미즈하시 카오리가 있었기 때문인데, 미즈하시 카오리의 특정 캐릭터 톤 연기를 마음에 들어하는 입장에서 차마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청을 해보니, 나름 이 애니메이션도 볼만할 것 같다고 생각이 바뀌게 되더군요. 우선 초심자 전학생이 본격적으로 스포츠에 몰입하는 계기 및 그와 관련하여 폐부된 부나 폐교 위기의 학교를 되살리고자 하는 이야기로부터 진행되는 전개는 어찌 보면 흔한 템플릿의 하나입니다만, 정석적인만큼 그 안정성도 증명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주연 캐릭터들도 괜찮게 배치되어 있고 서클릿 바우트라는 게임의 묘사나 주인공을 도와줄 AI의 등장 등 이야기에 살이 붙는 등 뒷이야기가 궁금하게게 하는 요소가 상당했습니다. 예쁘고 귀엽게 생긴 캐릭터들이 목표하는 스포츠에 충실하면서도 쓸데없이 심각해지지 않는 적당한 수준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이야기였던 것이지요.
여기에 개인적으로는 서클릿 바우트에 대한 묘사가 흥미로웠는데, 이게 애니메이션화의 효과인지 학생시절 오락실에서 즐겼던 소울칼리버라는 게임과도 상당히 비슷한 요소가 감지되더군요. 소울칼리버란 상당히 오래 전 게임입니다만 당시 인기를 끌던 KOF나 철권 같은 콤보 중시의 타 격투게임과 달리 이 게임은 캐릭터가 무기를 사용하는 격투게임으로서 3차원적 움직임과 무기의 유효거리 및 공·방·이동의 전환에 들어가는 딜레이가 절묘하게 매치되어 빠른 반사속도와 함께 한 타 한 타씩 유효타를 넣는 것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대의 공격을 튕겨내어 빈틈을 만드는 블로킹이 큰 위력을 발휘한 한편 이지선다라고 부르는, 시종일관 펼쳐지는 심리전이 대전에서 굉장히 중요했지요. 심리적으로 상대의 페이스에 붙잡혀버리면 절대로 못이기는 게임이라, 어떤 고수 상대로는 5000원 넘게 넣고도 한 번도 못이긴 기억이 아직도 선선할 정도입니다.
1화나 3화를 보면 서클릿바우트 역시 무기를 사용하는 격투로 콤보보다는 무기의 특성이나 반사속도 및 심리전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효거리가 넓은 무기의 공·방·이동 전환 딜레이가 더 크다든지, 3차원적으로 공격을 최대한 피해 돌아다니면서 퍼펙트 블록으로 빈틈을 만든다거나 상대의 공격을 노려 오히려 역공을 가한다든가 하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이며, 더 나아가 한 타 한 타의 질이 승패를 결정하는 요소로 묘사되고 있는 점 역시 그렇습니다. 물론 무기 중에 총이나 부메랑 같은 장거리무기가 있다든가 응원관중에 따른 보너스 같은 추가적인 특징도 언급되지요.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이 되겠지만 이런 요소를 통해서 이야기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점은 특히나 취향에 잘 맞는 부분이었습니다. 더욱이 그 격투가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한, 직접적 타격 없이 체감을 전달하는 순수한 스포츠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오락적인 면을 잘 드러낸다고나 할까요.
현재 방영된 3화까지 이 애니메이션은, 연애나 백합 요소가 진하게 섞인다든가 하는 식의 딴 길로 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생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정도도 아닌, 초심자면서도 굳게 진로를 청한 주인공의 스탠스 그대로 잘 모르는 시청자들이 주인공과 같이 점차 흥미를 갖고 이야기를 파악해나가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분위기상으로는 예전에 방영했던 '푸른 저편의 포리듬'과도 매우 닮은 느낌이 있는데, 거기서 남자코치의 존재를 빼고 액션 요소를 추가하면서 좀 더 직관적인 스포츠활동물이 되었다고 하면 적당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주인공이 천연이라는 점이나 초심자이면서도 엄청난 잠재적 재능을 갖고 있다는 점 등 파고볼수록 유사한 부분이 더 있는 것 같군요. 제작진을 보면 어찌 우연이 아닌 것 같기도 한데, 포리듬과는 달리 마지막까지 박자를 유지하면서 좋은 인상을 키워나가는 애니메이션이 되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본질은 홍보용 방영작이고 따라서 대작이 될만한 애니라고는 할 수 없다지만, 그래도 귀여운 캐릭터와 흥미 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나름의 재미를 선사해주는 TVA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