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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 와카바는 용자이다 단행본(하권) 특별 추가 번외편

2017. 4. 1. 20:00취미 겸 번역

대사의 히나타


 

번외편 맡겨진 배턴

 

 

 어두컴컴한 신전 속에서 촛불의 불꽃이 흔들린다. 단 하나뿐인 광원은 모인 사람들의 모습을 엷은 어둠 속에서 비추고 있었다.

 여기 둘러 앉은 채 모여 있는 사람들은 주로 대사 소속의 신관이다. 특히 발언력 높은 자들만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의 고위 신관들이 모여 있어도 지금 이 자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아니다. 아직 중학생에 불과한 한 사람의 소녀—우에사토 히나타였다. 

 오늘 신관들을 소집한 것은 히나타다. 그녀는 매우 중요한 용건이 있다고 말했다.

 신관들은 긴장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용자 노기 와카바를 이끌었다는 실적 때문에 지금 우에사토 히나타의 발언력은 강력해져 있다. 거기에 더해 작금, 그녀는 아키 마스즈를 시작으로 유력한 무녀들을 규합해 대사 안에서 큰 세력을 이루기 시작했다.

 무녀 중 최고 권위에 오른 소녀는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저 조용히 눈을 감고 정좌해 있었다. 소녀의 무언의 모습은 신전 안에 엄숙한 침묵을 가져와 공기는 마치 무게를 갖고 있는 것처럼 신관들을 짓누른다. 그들은 자신보다도 훨씬 어린 소녀가 발하는 위엄에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었다.

 신관들 전원의 앞에는 종이 다발이 놓여 있었다.

 흔들거리는 촛불의 불꽃.

 호흡조차 멈춰있는 듯한 정적.

 질량을 갖고 있을 것 같은 중압감.

 신관들은 무녀 소녀를 바라보며 그 말을 기다린다.

 이윽고 우에사토 히나타는 천천히 눈을 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럼 기획서의 1페이지를 봐주기 바랍니다. 오늘의 의제는 용자시스템의 업데이트에 있어 새로운 혁신을 가져올 방법의 제안입니다. 이름 붙여서 '초대용자 응원 프로젝트'. 이어서 두번째 페이지를 보아 주십시오."

 히나타의 말을 받고 신관들은 눈 앞에 놓인 기획서 표지 페이지를 엄숙하게 넘겼다.

 동시에 프로젝트로부터 스크린에 프레젠테이션 소프트웨어로 작성된 영상이 비추어진다.

 일부 고령의 신관은 컴퓨터에 어두워, 애니메이션으로 움직이는 스크린의 문자에 감탄의 한숨을 터뜨렸다.

 히나타는 기획의 개요를 계속해서 말한다.

 "본 프로젝트는 용자의 멘탈 측면의 보전에 대하여 큰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때는 이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용자시스템 강화안……이요?" 

 히나타가 와카바의 방에서 귀청소를 해주고 있을 때, 와카바가 용자시스템에 관해서 제안을 해 온 것이다.

 "아아, 조금이라도 미래의 용자들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해서 말야. 기초적인 전투능력의 강화뿐 아니라 심리적인 면에서도 지원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더할 수 없을까."

 용자의 전투에서 있어서 정신적인 측면은 중요하다. 인간을 초월한 신체 능력을 가진 용자라도 마음은 단순히 소녀에 불과하다. 상처받기 쉽고, 약하고 깨지기 쉽다. 정신면의 무방비가 바로 치히로의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심리적인 측면의 지원……확실히 그게 가능하다면 좋겠지만요."

 마음이란 복잡한 것. 어떻게 해야 마음을 건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 심리학자 수백명이 모여 생각해도 결정적인 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나도 구체적으로 확신할 만한 방안은 못 내겠지만……. 그냥 간단한 거면 돼. 그래, 이런 건 어떨까? 변신하면, 내 목소리가 어디선가로부터 들려오는 거야."

 "……!"

 그 제안에 히나타는 경직되어 귀 청소를 하는 손이 일순 멈췄다.

 "……와카바짱의 목소리가 어디선가로부터 들려 온다니, 너무 멋지잖아요?"

 "그렇지! 기록에 남아 있는 용자들 전원의 육성을 써도 돼."

 "좋네요! 저라면 힘이 100배가 될 테고, 음성 재생만 하면 되니까 분명 실현가능해요."

 "좋아, 바로 해보자!"

 "그, 그래서……어떤 말을 하는 건가요. 와카바짱은."

 기대를 담아 히나타는 와카바를 바라본다.

 와카바는 꽤나 길게 숙고한 뒤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지지마라! 일어서라! 힘내라! 라든지, 긍정적인 걸 계속해서 말해줄 거야!"

 와카바의 말에 히나타는 눈을 반짝인다.

 "어머어머, 이 얼마나 멋진……!"

 "그렇지!"

 "분명 미래의 용자들도 기운를 얻어서, 좌절하거나 하는 일은 없어지겠죠!"

 "응 응! 내가 생각한 거지만 명안일지도 모른다고!"

 "당장 대사에 제안해요! 지금부터 기획서를 만들게요! 철야에요! 밤새 기획서를 만드는 거에요!"

 두 사람은 흥을 타고 있었다.

 히나타는 컴퓨터로 기획서를 만들기 시작해, 다음날 아침까지 수십장에 달하는 기획서를 만들었다. 그대로 한숨도 못 자고 마루가메성을 나와, 대사로 향했다.

 그동안 와카바는 어떤 말을 미래의 용자들에게 해줄까 하고, 단련할 때와 똑같을 정도의 진지함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히나타는 지금 대사의 신관들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획서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발표를 마친 히나타는 신관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로부터의 제안은 이상입니다. 용자시스템의 그랜드 디자인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 단언합니다. 검토를 잘 부탁 드립니다."

 

 다음날, 히나타는 마루가메성에 귀환했다.

 매우 실망한 얼굴로.

 "기각되었어요……."

 "뭐라고!? 어째서야!?"

 와카바는 미래의 용자들을 향해 불어넣어줄 말을 이미 원고지 50장 분량은 써서 쌓아놓고 있었다. '첫 출전의 때' '싸움이 우세할 때' '기술을 사용할 때' '적의 틈을 찔렀을 때' '강대한 적에 공포를 느끼고 말았을 때' '남에게 미움을 품게 되어 버렸을 때' '기분이 우울할 때' '배가 고파졌을 때' 등 상황마다 응원의 말을 바꿔 줄 생각이었다.

 "전투 내내 목소리가 들린다니, 집중을 못 할 거다, 라고 하더군요."

 "으……! 확실히 그럴지도 몰라……." 

 "애초에 용자로 선택받는 자들은 응원받지 않더라도 싸울 수 있을 정도의 근성은 있을 거다, 라고." 

 "으음……."

 그렇게 말하면, 와카바도 반박할 길이 없다.

 와카바는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어쩔 수 없지, 포기할까."

 "아니요!! 포기할 필요는 없어요!!"

 히나타는 상반신을 앞으로 뻗으며 외친다.

 "기각되긴 했지만 초대용자가 격려하는 시스템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와카바짱에게서 이 제안을 들었을 때 저는 파팟하고 느낌이 왔었으니까!"

 "오, 히나타도 그렇게 생각해 주는 거야?"

 "물론이에요. 그래서 좀 더 유용하게 깊숙한 쪽에서 도움이 되는 플랜을 생각해 왔어요." 

 "……그건 어떤 거야?" 

 와카바가 흥미진진하에서 히나타에게 묻는다.

 소꿉친구의 주목을 받으며 히나타는 에헴하고 헛기침을 했다.

 "정령 시스템이에요, 와카바짱."

 그 말에 와카바의 눈썹이 곤혹한 티를 드러낸다.

 "정령을 몸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것은 위험하니까 그 기능은 없앨 예정이잖아?" 

 "네, 하지만 인조정령, 정도라면 해는 없을지도."

 히나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와카바는 바로 알아챘다.

 "그렇구나! 내가 요시츠네와 같은 정령이 되는 건가. 응 응, 그렇다면 미래의 용자들과 함께 계속 싸워나갈 수 있게 될 거야!"

 정령이 된 자신의 모습을, 와카바는 상상했다. 무엇보다도 정령은 용자들에게도 보이지 않으니까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미래의 용자 곁에 수호령처럼 위풍당당히 선 자신의 모습을 마음 속으로 그려 봤다. 

 ……300여년 후에 탄생하는, 눈에 보이는 형태의 '정령'이 마스코트 캐릭터와 같은 모습이라고는, 와카바는 알지 못한다.

 "음, 멋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리고 같은 용자인 내가 곁에 있는 걸로 미래의 용자들도 든든하게 느끼겠지. 혼자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좋아, 해보자!"

 "아니오, 아쉽지만, 의도해서 정령이 되는 기술 같은 건 없어요." 

 "음, 그런가……."

 즉답으로 부정되어, 다시 가라앉는 와카바.

 "다만 의사적인 것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능력을 지닌 정령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비디오의 영상 같은, 재생 전용의 정령이라면." 

 "재생 전용……?" 

 "지금까지의 싸움을 생각해 봐요. 정령 탓에 쌓인 부정함은 내면으로부터 부정적인 말이나 영상을 보여줬었죠? 와카바짱의 의사정령은 내면으로부터 긍정적인 목소리나 영상을 보여주는 거에요."

 "목소리나 영상……만?" 

 "네. 아마 그게 한계에요."

 "하지만....그것만이라면 결국 전투 때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와카바의 의문에 히나타는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서 방해가 안 될 때로 한정하는 거에요. 예를 들어 적의 정신 공격으로 마음을 부서진 용자. 싸움 때문에 마음을 다쳐 버린 용자. 그런 용자에 대해서 와카바짱의 의사정령이 나타나, 격려해주는 거에요."

 "그렇다면 싸움에 방해는 안 되겠구나."

 "네, 그런 사람의 마음이라면, 와카바짱의 의사정령이 나타나도록 입력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뭐, 마음의 틈을 파고드는 요괴라고 하면 듣기 그렇지만."

 "그건 너무 그렇잖아!"

 분개하는 와카바에게 히나타는 '농담이에요'라며 웃는다. 물론 와카바도 농담임을 알고 화내는 것이다. 평소 두 사람이 서로 장난칠 때의 모습이다.

 "다만 기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어디까지나 와카바짱의 기록이 격려하는 것 뿐이에요. 따스한 격려가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 목소리나 영상도 결코 모든 것을 그대로 전달해줄 수 있을 거라곤 보장할 수 없고 추상적인 이미지 같은 것이 될지도 몰라요. 결국, 마음이 꺾인 용자가 다시 일어날지 어떨지는 본인에게 달렸어요."

 히나타의 말에 와카바는 끄덕이며 말한다.

 "상관 없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걸로 좋아."

 이렇게 와카바 의사정령화 계획은 정리되어, 대사로부터의 허가도 나왔다. 대사로부터는 일부, 효과를 의문시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그래도 해줬으면 한다고 히나타는 강하게 호소했던 것이다.

 

 대사로부터 허가가 난 다음날, 히나타가 마루가메성의 교실에 갔을 때 아직 와카바는 등교해 있지 않았다. 평소라면 와카바가 먼저 와서 칠판의 분필 준비를 하거나, 꽃병의 물을 갈아주고 있을 터지만.

 히나타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교실 안을 빙 둘러보았다.

 이 교실에 다니는 사람은 이미 히나타와 와카바 뿐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책상은 예전과 똑같이, 여섯을 남겨놓고 있다.

 여섯 명으로 한 반.

 비록 목숨을 잃었더라도 그녀들은 모두 동급생이다.

 "오늘은 아직 와카바가 와있지 않은데! 타마, 첫 도착이닷!" 

 "유감이에요, 타맛치 선배. 히나타상 쪽이 먼저였어요."

 "헐!"

 "괜찮아, 타마짱. 내일이 있어!" 

 "물러, 타카시마상……. 내일이 있어……. 내일할래……. 내일부터……. 그 말을 한 순간 어째선지 그 일은 대개의 경우 실현되지 않게 돼……." 

 "불길한 말 하지 마! 타마는 절대로 내일이야말로 빨리 일어나서 제일 먼저 등교해 줄거얏!"

 그런 목소리가 지금도 들려오는 듯하지 아니한가.

 히나타는 멍하니 있으면서 아침의 교실에 홀로 있었다.

 이윽고 시간은 10분, 15분, 하고 지나간다.

 "……이상해……."

 곧 조례가 시작될 시간인데도, 와카바는 오지 않는다. 이런 일은 초등학교 때부터 한 번도 없었다.

 히나타는 급격하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아침에도 식당에서 와카바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먼저 학교에 갔을 거라고, 그때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젯밤에 와카바에게 '안녕히 주무세요'라 하고 헤어졌을 때부터, 히나타는 한 번도 그녀와 만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와카바를 봤을 때부터 이미 10시간 이상은 지나 있다.

 그만큼의 시간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갑자기 버텍스가 침공해 왔던 것은 아닐까. 버텍스의 침공 동안 히나타는 용자가 싸우고 있는 것조차 눈치챌 수 없다. 그리고 와카바가 혼자서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면……? 

 아니, 버텍스의 침공이 아니더라도 갑작스러운 병에도 걸릴 수 있다. 자는 사이에 급사하는 병도 있고, 돌발적인 병으로 소리도 못 내고 쓰러져 그대로…….

 아니면 무언가의 사고? 와카바는 종종 얼빠질 때가 있으니까 목욕하는 사이에 깜빡 잠들어 버려서…….

 전사. 병사. 사고. 모든 불의의 사태.

 

 사람은, 간단하게 죽는다.

 

 "……!!"

 히나타는 의자에서 튀어 나가는 듯한 기세로 일어나 교실 출입구로 달려 나간다.

 '싫엇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엇!! 와카바짱까지 없어진다는 건……!!'

 왜 어젯밤, 와카바와 떨어지고 말았던 건가. 계속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한시도 떠나지 않고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유우나가, 치카게가, 타마코가, 안즈가 목숨을 잃었다. 겨우 1년만에 네 명이나 죽었다.

 와카바까지 없어지면……. 혼자 뿐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다.

 "와카바짜……."

 "우와!"

 히나타가 교실 문을 여는 순간 눈앞에 와카바가 서있었다. 마침 문을 열려고 하던 참이었는지, 와카바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왜 그래, 히나타? 새파랗게 되서."

 "와……와카바, 짱……."

 히나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것을 와카바는 알아채지 못한다.

 "다행이야, 아직 조례 전인가. 미래의 용자들에게 전할 말을 생각하고 있었더니, 철야를 해도 끝나지 않아서 말야. 덕분에 늦었어."

 "으, 우우우……. 우아아아아아앙!!"

 히나타는 와카바에게 달라붙어 울기 시작했다.

 "어, 어이, 히나타? 왜 그래……?"

 갑자기 울며 매달려 와서, 와카바는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그게, 그게……! 와카바짱이, 오지 않아서……. 흑, 으으……. 와카바짱까지, 없어졌나 하고……. 우아아아아아앙!!"

 "히나타……."

 흐느끼는 히나타의 모습을, 와카바는 조금 놀라서 바라본다.

 히나타는 지금까지 계속 다부지게 행동하고 있었다. 안즈, 타마코가 죽임을 당한 후에도, 치카게와 유우나가 목숨을 잃은 후에도……. 혼자서 비탄에 빠지는 일은 있었어도 결코 남 앞에서 침울해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싸우지 못하는 자신은. 적어도 강하게 행동해 보임으로써 주변을 기죽지 않게끔 하려고 했다.

 그래서 와카바도 주변의 어른들도, 우에사토 히나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침착하게 있는, 어른스러운 소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

 안즈와 타마코가 죽었다.

 치카게가 죽었다.

 유우나가 죽었다.

 친구가 한 명, 또 한 명씩 죽어간다…….

 불안. 공포. 비관. 불안. 두려움 불안.

 얼마나 소중한 것이든, 간단히 사라져 버린다.

 히나타는 매우 사소한 일에마저 겁을 내게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이미 네 명이나 죽었으니까! 더 죽지 않는다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

 그 불안이 폭발하여, 지금의 그녀는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우우, 흑, 으으으……." 

 "……미안해. 걱정시키고 말았구나."

 와카바가 히나타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는다.

 "맞아요……. 흑, 걱정, 했다고요……."

 "괜찮아. 나는 없어지지 않아. 죽 네 곁에 있을 거야."

 "네……. 계속 함께 있어 주세요……."

 "아아. 학교를 졸업해서도, 어른이 되어서도, 할머니가 되더라도 계속 함께야."

 "절대……. 절대로에요……." 

 "약속할게."

 히나타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계속 와카바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흐느끼는 히나타

 

 그 날 방과후, 와카바와 히나타는 방송실에 있었다. 미래의 용자에게 맡길 말을 일단 녹음해놓기 위해서이다. 와카바의 음성 데이터는 나중에 대사 내에서 영적인 처리가 이루어져, 용자 시스템에 넣어지게끔 될 것이다.

 정좌한 와카바의 앞에 마이크가 놓여져, 마이크는 노트북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다. 히나타는 컴퓨터 앞에서 녹음 프로그램을 조정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히나타가 그렇게나 우는 걸 본 건 처음이네."

 "……! 그만 말하지 말아 줘요, 부끄러우니까……."

 컴퓨터를 조작하면서 히나타는 얼굴을 붉힌다.

 "모처럼이니 사진을 찍어 놨어야 했는데 말야. 언제나 찍히기만 할 뿐이니……."

 "와카바짱? 화낼 거에요?"

 웃는 얼굴로 히나타는 말한다.

 "……미안."

 이 이상은 건드려선 안 된다고, 와카바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와카바는 헛기침을 하고 마이크를 향한다.

 "……이 마이크를 사용하는 건 오랜만이네. 시라토리상과 통신을 하고 있었을 때에는 매일같이 쓰고 있었는데."

 아주 약간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네요……. 벌써 상당히 옛날 일처럼 느껴져요."

 얼마가 지나든 죽은 친구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계속 이 슬픔에 젖어 있고 싶은 무른 감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과거에 빠져서는 안 된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계속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요……. 그렇죠, 와카바짱."

 "아아, 그렇고 말고."

 그리고 녹음 소프트의 조정이 끝나 준비가 갖추어졌다.

 "그럼,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해 주세요."

 "좋아……."

 와카바는 아주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반갑다, 미래의 용자여. 나는 노기 와카바. 서력 2019년, 아니 신세기 원년에서 용자의 직붙을 맡고 있는 자. 수십년, 어쩌면 수백년이나 지난 뒤일 너에게 미래의 희망을 건 자다.

 버텍스가 출현한 날 우리는 많은 것을 빼앗겼다.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 우리는 막강한 적에 맞서서 싸웠다.

 가장 처음에는 시라토리 우타노와 후지모리 미토.

 그 다음이 우리들. 타카시마 유우나, 코오리 치카게, 도이 타마코, 이요지마 안즈, 우에사토 히나타, 노기 와카바.

 신세기 원년인 지금 시코쿠는 싸움으로부터 벗어나 있지만, 이 목소리를 듣고 있는 너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버텍스와 얼마나 많은 싸움이 일어날지, 몇 명의 용자가 태어날지, 내게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용자들이 때로는 공포에 질리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 싸워나가리라고 믿고 있다.

 우리 대의 용자는, 시라토리 우타노로부터 배턴을 계승했다.

 그 배턴은 곧 다음 대로 넘어간다.

 그리고 다음의 다음 대에. 다음의 다음의 다음 대에. 다음의 다음의 다음의 다음 대에. 몇 대이든 몇 번이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더라도……. 이어져 가게 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배턴의 이름은 '용기'다. 별명으로 '희망'이라고 한다. '소원'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의 나는 미래의 너에 대해서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 기껏해야 이렇게 말을 해주는 것 정도 밖에 못한다.

 하지만 믿어줬으면 한다. 네 뒤에는 배턴을 이어 온 많은 사람들이 있다.

 둘러보기 바란다. 네 곁에는 지금까지 네가 함께 지내온 친구나 가족이 있다.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알리고 싶다.

 아마 지금의 너는 매우 괴로워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픈 일, 슬픈 일, 절망스런 일……. 힘내고 힘내서, 그래도 못 견딜만큼 괴로운 일이 있었던 것이겠지. 그렇기에 내 목소리가 들리고 있을 터이다.

 그런 너에게 내가 말하고 싶은 말은 '더 싸워라'도 '더 힘내라'도 아니다.

 살아라.

 그저, 살아줘.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일을 상기해주기 바란다. 네가 살아가길 포기하면 그 사람이 슬퍼한다는 것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나는 많은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 너의 소중한 사람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 하지 않게 해줘. 그 사람이 있는 곳에 반드시 돌아가 줘."

 

 후우, 하고 와카바는 한숨을 내쉬고 만족스러운듯 미소를 지었다.

 "좀 길어져 버렸지만, 전하고 싶은 것은 말했다고 생각해."

 "우후후, 그저 용자시스템을 남길 뿐이 아니라, 조미료를 넣을 수 있게 되었네요." 

 "……아아. 미래의 용자를 위해서, 시스템은 더욱 강화해가고 싶어."

 "네. 하지만 적을 속이면서 일을 진행하려면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초능력의 향상만으로에도 엄청난 시간이 걸릴 거라고 각오해 주세요. ……위험해지면……. 일시적으로 동결하는 일도 있을 수 있어요."

 용자시스템이 남아 있음을 하늘의 신에게 들켜 적이 쳐들어 오게 되면 말짱 헛것이 된다.

 "알고 있어. 가늘고 길게 연구해나간다, 라는 이야기였으니까 말야. 더 이상의 기능을 추가할 필요도 없어."

 "네. 무엇보다도 기초전투력 향상에 중점을 둔다, 였죠."

 "서둘러도 소용없어. 기반을 굳혀 가면서 해나가자."

 얼마나 느린 걸음이든, 싸울 힘과 이빨을 반드시 미래에 남긴다—그것이 와카바와 히나타의 맹세다.

 "저, 와카바짱. 저도 때때로 '귀신'이라는 정령을 빙의시키고 있어요."

 "뭐, 뭐라고?"

 "후후, 비유지만요. 조직을 관리하는 인간은 마음을 독하게 먹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있어요. 그 때문에……. 설령 소중한 것이라도, 기록에서 말소하지 않으면 안 되요."

 히나타는 자신에게 타이르는 것처럼 말한다.

 그 말의 의미를 와카바는 알아채줬다. 

 "……치카게 말이야……?" 

 "네. 그녀의 기록은……. 지울게요. 그녀를 옹호하면, 대사 안에서 활동하는데 지장이 생기니까……." 

"……정치가 같은 말을 하는구나."

 와카바는 그렇게 말하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 빠져 버린 자신의 한심함에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미안해요……. 이럴 수 밖에는, 없어요."

 히나타는 고개를 숙여, 쥐어짜듯 말한다.

 "대사의 권력은 막강해요. ……하지만, 그 내부에 있는 인간이 모두 성인군자인 것은 아니에요. 권력을 이용해 제멋대로인 행동을 하려는 사람도……. 분명 나올 거에요. 그런 사람들에게 대사의 실권을 넘겨줄 수는 없어요. 어떻게든 제가 활동해서, 대사라는 조직의 건전함을 지켜가지 않으면……."

 '대사'라는 조직은 이름의 한자를 바꿔 새로 태어났다. 앞으로 인사정리나 신전의 변경·개축 등도 진행될 것이고, 조직으로서의 권력도 한층 강해질 터이다. 대사는 바뀌어 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타락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히나타는 오사카 지하에서 본 일기를 떠올렸다. 제멋대로인 사람들이 일으킨 비극—그런 일을 다시 일으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강한 결의에 찬 히나타의 얼굴을 보고, 와카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도 힘든 건 너겠지……. 맡길게."

 "네. 그저 치카게상의 이름은 어딘가에 남길 거에요. '치카게'라는 이름은 응용이 가능할 것 같으니까요."

 "……아아."

 

 히나타와 와카바는 마루가메성을 나와 기숙사로 돌아간다.

 본성의 성곽으로부터 보이는 도시는 황혼의 자줏빛으로 덮여 있었다.

 히나타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시코쿠는 오늘도 평화로워, 넓고 높은 하늘이 펼쳐지고 있다.

 히나타는 하늘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하늘은 너무 높아서, 사람의 손에는 너무나 멀다.

 "우리들 인간은 땅에 살아, 하늘에게 멸시받고 감시당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인간은 약하지만 그렇기에 단념이 더뎌요."

 히나타의 말에 와카바가 웃는다.

 "아아. 기나긴 싸움이 되겠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자. 히나타, 네가 함께 있어 준다면 나는 계속 앞을 향해서 갈 수 있어. 여태까지도 그랬었어."

 '저도 마찬가지에요'라고 히나타는 미소 지으며 답한다.

 "고마워, 히나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으로도……. 잘 부탁해."

 "저야말로. 죽 함께 있겠다고 약속했고요. 게다가 아무리 곤란한 목표라도, 해보면 대개는 어떻게든 되는 법이에요."

 서력 시대의 종막.

 버텍스와의 전쟁은 일시적으로 종식되어, 하지만 용자와 무녀들의 싸움은 이어져 간다…….

 

 

 

 신세기 300년, 가을.

 산슈 중학교 용자부 일동은 노기 소노코의 집에서 책 정리를 돕고 있었다. 소설의 소재 때문에 소노코가 본가에서 보내게 했던 대량의 책이다.

 그 안에 '용자어기'라는 책이 발견됐다.

 "노기……. 와카바……. 내 조상님~? 이 사람이 일기를 썼다면, 조상님은 용자?"

 "소놋치의 선조가 용자어기를 쓰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자손인 소놋치이기에 일기에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그런 옛날에 용자가 이미 있었다는 거네……. 장난인 것 같진 않고……. 놀랐네, 유우나."

 "……."

 후우가 말을 걸었지만 유우나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용자어기의 마지막 페이지에 붙어 있던 노기 와카바의 사진에 죽 몰입해 있었다.

 그야말로 '마음이 여기 있지 않은 상태' 같은 표정이다.

 "유우나, 왜 그래?"

 다시 물어보자, 겨우 유우나는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이 노기 와카바라는 사람……. 어딘가서 만난 거 같은 기분이 들어."

 "에? 하지만 구세기의 사람이라고?"

 의아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다 후우. 유우나도 분명한 확신은 없어서, '으응'하고 작게 소리 내며 기억을 더듬는다.

 "……그래! 마지막 싸움이 끝나고 내가 의식을 잃었던 때일까? 만난 듯한……. 말을 걸어준 것 같은……? 으~응, 뭐랄까 제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유우나는 난처한 듯 미소를 띄운다.

 "말을? ……설마 과거의 용자님이 격려해 주셨던 걸까요?"

 토고는 노기 와카바의 사진을 응시한다.

 과거의 용자가 미래의 용자를 격려한다—비현실적인 꿈 같지만, 애초에 용자의 힘도 사람의 상식을 넘어선 힘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왠지 드라마틱해요."

 이츠키가 넋 잃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츠키는 특히 이런 이야기가 좋은 것 같네'라고 언니가 놀리듯 말하자, 여동생은 조금 볼을 붉혔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죠."

 토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페이지를 넘겨 간다.

 다른 다섯 명도 책을 들여다 본다.

 "어느 페이지든 덧칠 투성이네……. 아, 이 주변, 아직 문장이 남아있어. 어기는 혼자 쓴 게 아닌가보네."

 넘겨 가는 페이지의 일부를 카린이 가리켰다.

 검열을 면한 부분에는 사람 이름이라고 생각되는 단어가 기록되어 있었다.

 "도이 타마코……. 이요지마 안즈……. 타카시마 유우나……. 에, 유우나짱?"

 토고는 책과 유우나를 비교하듯, 번갈아 본다.

 "나와 같은 이름이다……. 우연일까."

 "으으응, 우연이 아닐 거라고 생각해~."

 "에?"

 소노코에게 관심이 쏠렸다.

 "에 또 말야~, 옛날 들은 적이 있어. '유우나'라는 이름은 특별하다고. 아주 오래 전부터, 태어났을 때에, 이~런 일을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이름이야~."

 소노코가 양 손을 맞부딪치게 하는 것 같은 몸짓을 한다.

 "……? 아기가 손장난을 하면서 우연히 그런 동작을 한다……는 느낌? 운수가 좋은 거네, 그거."

 "응 응, 그런 거~. 니봇시, 훌륭해~."

 태어날 때 특별한 몸짓을 한 아기에게는 과거의 용자로부터 따온 이름을 준다—일종의 미신일 것이다.

 "'유우나'라는 이름은 이 타카시마 유우나라는 용자로부터 비롯된 신세기의 오랜 역사 속에서 내려온 이름인 거네……."

 토고가 역사에 마음을 기울이는 한편, 후우가 한쪽 눈을 누르면서 쓸데없이 포즈를 취하며 말한다.

 "그런가……. 자네는, 유우키 유우나라는 건……. 유우나 인자를 가진 유우나의 한 사람이었던 건가……."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언니."

 모두 터져나오듯 웃었다.

 토고는 색 바랜 용자어기를 보면서,

 "아마도 이 책은 숨겨서 남기려 했던 것 같지만요……."

 "결국 발견되서 검열당해 있는 부분은, 웃긴 초대님이네. ……그래도 남아 있는 작은 기술만으로도, 서력의 시대에도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알겠어. 그건 전해졌어."

 과거의 용지들도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상처 받아, 하지만 열심히 살았던 것일 터이다. 

 유우나는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우리들의 지금이 있는 건 아주 옛날부터의, 많은 사람들의 쌓아왔던 것 덕분이었던 거구나.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


초대용자의 뜻을 생각하는 유우나

 

 그날 밤, 소노코의 책 정리가 끝나고 모두가 귀가한 후.

 토고는 아주 잠시 소노코의 집에 남아 그녀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 용자어기, 검은 부분에서의 검열과 붉은 부분에서의 검열이 있었어. 아마 두 번 검열되어 있어. 그리고 두 번째로, 거의 다 지워져 있어."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한 가지네~."

 "응. 대사의 은폐 체질은 해마다 강화되어 갔어."

 "커다란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규정이 100년. 200년씩 길고 길~게 시간이 지나서……. 좀 일그러지게 되어 버렸던 거겠네……. 그 극단이 산화의 은폐인 거야."

 300년.

 그 시간은 아찔할 정도로 길다.

 우에사토 히나타와 노기 와카바가 중심이 되어 만든 '대사'. 그녀들이 있었던 시대, 그것은 지금보다도 건전한 조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든 불변영원한 것은 없다. 대를 거듭하며 시간을 거치는 사이 마모되어 변모되고 만다.

 "하지만 앞으로는 제대로 말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말야~."

 "그러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자."

 작은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가는 것—그 걸음이 미래에의 배턴이 된다.



(번외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