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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려라! 유포니엄 원작관련 단편 - 하즈키의 첫사랑 이야기

2015. 5. 7. 20:00이야기들/애니메이션 이야기

 

2015년 2분기 TVA 신작 중 '울려라! 유포니엄'이 역시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예술적인 경지에 다다른 배경작화의 굉장함과 더불어서 전체적으로 최상급인 작화와 재미있는 캐릭터들 및 꽤나 잘 짜여진 부활동 관련의 청춘이야기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처럼 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방영 전에 크게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제작사가 높은 퀄리티를 보장하는 쿄토 애니메이션인만큼 기본적으로 의식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알려진 대로 '울려라! 유포니엄'은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1쿨 분량의 TVA입니다. 원작은 현재 3권까지 나왔고, 1권에서 교토부 대회, 2권에서 관서지부 대회, 3권에서 전국대회에 나가는 키타우지 고교 취주악부의 주인공 일행과 그 주변을 그리는 전형적인 부활동 중심의 청춘 이야기이지요. 다만 흔히 알려진 음악관련 애니마냥 밝고 경쾌한 의미의 청춘이라고는 할 수 없고, 오히려 진지하면서도 복잡하게 얽히고 부딪치는 인간관계 속에서 주연들이 성장하는 의미의 청춘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취주악부라는 부활동은 이런 이야기에 딱 알맞는 환경인 셈입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원작소설이 청춘극이고 또한 '러브스토리 대상'까지 받은 것에도 불구하고, 연애 요소가 원작내에서 그렇게 확실하게 부각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군상극에 가까운 이야기 구성 상 주인공인 쿠미코가 잘 튀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슈이치를 둘러싸고 쿠미코와 하즈키가 얽히는 등 연애요소가 분명 있기는 한데 그게 확실하게 맺고 끊어지는 것도 아니고 두리뭉실한 감이 좀 있습니다. 분명 소꿉친구인 쿠미코와 슈이치 사이에 플래그가 서있음을 보여주고는 있는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할까요. 청춘군상극이라면 모르겠지만, 받은 상의 이름처럼 연애가 주된 이야기는 확실히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원작의 이야기를 보완하는 여러 단편이 추가로 팬들에게 공개되고 있는데, 개중에는 하즈키가 슈이치를 좋아하게 된 이유나 그 첫사랑의 결말, 그리고 슈이치의 마음을 그린 이야기도 있어서 조금 씁쓸하면서도 역시 재미있는 느낌입니다. 해당 단편은 아오이의 퇴부 직후와 6월5일 축제무렵의 두 시점으로 나뉘어서 하즈키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하즈키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원작소설에서 세세한 부분을 많이 각색한 TVA 역시 이 단편을 참조로 해서 복선들을 추가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선라이즈 페스티벌을 마친 5화에서 하즈키를 돕는 슈이치의 장면 등도 이렇게 추가된 복선의 일종이지요. 본편에 관심이 있다면 이런 단편들을 추가로 읽어보는 것 역시 괜찮겠다고 생각됩니다. 참고라고 할까, 재미를 위해서 하즈키의 첫사랑을 그린 단편은 대강 해석해서 아래에 붙여놓았습니다. TVA와 마찬가지로 사투리는 표현에 골치가 아픈 고로 그냥 표준어로 대체했습니다. 사파이어의 말투가 TVA와 다르다는 것 등 이런 세세한 차이 역시 눈길을 끄는 부분입니다.

 

1쿨이라는 분량상 TVA는 원작 소설의 1권까지만 애니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원작을 모르는 상태에서 봐도 전개가 느려 보일 듯 한데, 전국대회를 목표로 정한 취주악부가 배경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분량문제는 아쉽기만 합니다만 그렇다고 기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후 방영할 6화에서는 콩쿨을 위한 편성 및 아오이의 퇴부와 관련된 소란에 관한 이야기가 그려질 것이고,그 이후에는 슈이치를 둘러싼 쿠미코와 하즈키의 삼각관계 비슷한 이야기도 나오겠지요. 레이나와 급속도로 친해지는 쿠미코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쿨 내에서 원작 1권의 이야기만큼은 아마도 확실하게 그려주겠지요.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분량이 충분한만큼, 잘 되면 2기가 나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현재 반응이 좋은 만큼 점점 기대가 더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군요.

 

 


 

좋아하는 사람의 좋아하는 사람 (1)

 

 하즈키는 연애가 질색이다. 연애라든가 애정이라든가, 그런 경박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소녀 만화라든지 연애 드라마라든지 그런 것이 좋다는 듯 하지만, 적어도 하즈키는 그것을 좋아서 일부러 보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가족과 함께 거실에 있을 때 그런 드라마가 나오고 있으면 어쩐지 부끄러워지고 만다. 서점에서 소녀 만화를 사는 것도 부끄러워서 못한다. 물론 자신을 누군가가 신경 쓰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서점의 점원이 여고생이 소녀 만화를 샀다는 것 정도로 뭐라고 생각할 리도 없다. 그런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부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성품이니까.

 

 "그치만 그치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분명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야."
 사파이어가 그렇게 말하면서, 언제나처럼 천진스레 미소짓는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둘이서 느긋하게 역으로 향하면서 하즈키와 사파이어는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사파이어는 하즈키와 대조적으로, 연애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렇게 말해도, 미도리도 좋아하는 사람 있었던 적 없잖아?"
 "없~지~만~, 그래도 그런 거 아닌가 "
 "그래?"
 수상쩍은 듯한 시선을 보내는 하즈키에게 사파이어는 삐친 것처럼 입술을 세운다.
 "그렇다니까. 만화에서는 모두 그런걸."
 "만화의 세계에서만이잖아."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게 소녀의 마음이라는 거잖아?"
 "흐응, 뭐 그런가."
 "그런 거라니까."
 확고하게 단정짓는 말을 듣고는, 하즈키는 떨떠름하게 납득하기로 했다. 사파이어는 학교 가방을 부둥켜안고는, 황홀한 어조로 말했다.
 "미도리 말야, 중학교 때는 여학교였으니까. 지금처럼 평범하게 남자애와 같은 반에 있는 것만으로 뭔가 좀 두근두근거려."
 "에~, 너 평범하게 적응하고 있잖아. 옆의 남자하고도 잔뜩 말하고 있었고."
 "평범하게 보일 뿐이라니까. 실은 굉장히 긴장하고 있다고."
 "헤~"
 "우와, 반응이 뭐 그래!"
 이쪽의 반응이 못마땅했는지, 사피이어는 볼을 불린다. 하즈키는 쓴웃음을 지으며 발에서 한보 앞으로 옮겼다. 사파이어는 키가 작다. 작은 보폭으로 열심히 이쪽에 맞추려고 하는 그 모습은 소동물을 연상시켜서 뭐랄까 귀엽다.

 

 "그래서, 미도리는 좋아하는 사람 생길 것 같아? 말하는 것만으로 두근두근하는 녀석?"
 하즈키의 물음에 사파이어는 생각에 빠진 듯 가방을 든채로 팔짱을 낀다.
 "그게 말이지, 뭔가 필이 안온다."
 "뭐야 그게."
 기가 막혀하는 듯한 하즈키에게 사파이어는 "그치만~"이라고 변명조의 말을 하고 있다.
 "미도리, 실제 어떻게 되는지는 전혀 모르는 걸. 이런 건 아마, 인생의 선배에게 물어보는 게 좋아! 아스카 선배라든지."
 "에~ 그 사람 연애하는 모습 같은 거 상상이 안가."
 "그렇다고 할까, 뭐랄까 갖가지 사람들에게 시중들게 할 것 같네."
 도대체 무엇을 상상했는지, 사파이어의 얼굴이 갑자기 붉게 달라올랐다. 어지러울 정도로 표정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질리지가 않는다. 하즈키는 킥킥 하고.목을 울리고 사파이어의 등을 다독였다.
 "미도리도 아스카 선배 같은 거를 목표로 하면?"
 "무리라고. 왜냐면 어쩐지 아스카 선배는 어덜티~한 느낌이 들거든"
 "확실히"
 아스카가 가끔씩 발하는 그 요염한 공기는 하즈키가 골치를 썩히는 부분이었다. 뭐랄까, 뱀에게 노려지고 있는 개구리 같은 기분이 되는 것이다. 잡아먹힐 것 같다고 할까, 삼켜질 것 같다고 할까.
 그런 게 아니고 말야, 하고 사파이어가 말을 계속한다.
 "더 순수한 연애가 하고 싶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뭉클해져서 뜻밖에 손이 맞닿아서 두근! 하는 거 같은."
 그렇게 꿈꾸듯 말하는 사파이어에게, 하즈키는 어이 없어 하는 얼굴로 말했다.
 "……너, 소녀 만화 너무 많이 읽는 거 아니야?"

 

 그래, 그런 일은 소녀 만화의 세계 속일 뿐일 거라고, 하즈키는 그 순간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토, 그거 혼자선 무겁지 않아?"
 튜바가 들어있는 악기 케이스를 혼자서 끌어안고 있었더니, 계단 앞에서 츠카모토가 말을 걸어왔다. 하츠키는 얼굴을 들어 목소리의 주인에게 시선을 보낸다. 츠카모토 슈이치. 그는 중학교 때부터 취주악부에 소속되어 있어서, 1학년이면서도 트럼본 파트에서 활약하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꽤 연주를 잘하는 것 같다.
 선라이즈 축제를 향한 연습 때문에 부원들은 모두 안뜰로 악기를 나르기 바빴다. 하즈키 자신은 초심자였기에 실전에서 연주하지는 않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서 악기를 갖고 움직이는 연습은 한다는 듯 했다. 초심자는 초심자끼리 모여서 연습할 거니까, 라고 지도를 맡았던 2학년생의 말을 떠올린다.
 눈 앞의 동급생은 선배들과 섞여서 연습하고 있는 것일 터이다. 쿠미코도, 사파이어도 그렇다. 자신과는 달리, 죽 죽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니, 괜찮아. 굴러가는 것도 붙어 있고."
 하즈키는 그렇게 대답하며, 그의 제의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튜바의 악기 케이스 끝에는 여행 가방처럼 작은 바퀴가 붙어 있다. 평지를 나아갈 때는 케이스를 기울여서 움직이는 것이다.
 "나는 괜찮으니까 다른 사람들 쪽을 도와줘."
 "아니, 그게 더 나를 게 거의 없어서."
 게다가, 라고 츠카모토는 태연한 얼굴로 말을 계속한다.
 "계단에선 굴러다니는 거 못쓰잖아. 들어줄게."
 나무랄 데 없는 정론을 듣고 하즈키는 거절할 이유를 잃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하즈키는 다른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서툴다. 자신이 다른 여자보다 힘이 있는데다, 의존하기보다는 의존받고 싶다. 그렇게 평소부터 생각하는 하즈키에게, 츠카모토의 제의는 어쩐지 가슴을 산만케 하는 것이었다.
 "그럼 아래쪽 잡아 줄래?"
 "알았어."
 하즈키의 말에, 츠카모토는 순순히 따랐다. 악기 케이스를 옆으로 살짝 눕혀 그 양끝을 둘이서 잡는다. 솔직히, 츠카모토라면 혼자서도 악기를 운반하는 것은 쉬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악기를 완전히 남에게 맡기는 것은 하즈키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카토는 고등학교부터 취부 들어간 거였지? 튜바는 힘들지 않아?"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면서, 츠카모토가 물어본다.
 "처음엔 트럼펫이 좋았지만 지금은 꽤 재미있다고 느끼게 됐어. 츠카모토는 계속 트롬본?"
 "아니, 중학 시절에는 호른 했으니까. 트럼본은 고등학교부터. "
 "엣, 그래?"
 놀라서, 하즈키는 무심코 걸음을 멈췄다. 움직임에 따라, 츠카모토 또한 발걸음을 멈춘다.
 "고교부터인데도 굉장히 잘하는구나. 나, 쿠미코처럼 계속 같은 악기 한 거라고 생각했어."
 "옛날부터 트럼본 하고 싶어서 말야. 나, 재즈 트럼본 좋아하니까."
 그렇게 말하고 상냥한 미소를 짓는 츠카모토에게, 하즈키의 심장이 덜컥 뛰었다. 왠지 갑자기 더워지기 시작했다. 화끈거리는 뺨을 숨기려, 하즈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장해서 악기 케이스를 응시한다.
 아, 이런 곳에 상처가 생겨 있다. 어딘가에 부딪친 걸까.
 "거기 턱 있으니까 조심해."
 "아, 응."
 츠카모토의 말을 듣고 하즈키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본다. 그 행동이 귀여웠던 것인지 그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자, 수고했어."
 드디어 계단을 다 내려와서, 츠카모토는 악기 케이스를 세워놓는다. 그 순간, 그의 손가락이 희미하게 하즈키의 손가락에 겹쳤다. 피부와 피부가 접촉한다. 그 순간, 하즈키는 반사적으로 손을 오그렸다. 온몸의 피가 얼굴에 쏠리고 있는 것 같다. 뿜어져나오는 수치심을 뿌리치려는 듯 하즈키는 일부러 소리를 질렀다.
 "도와줘서 고마워!"
 돌연 큰소리를 낸 하즈키에게, 츠카모토는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별로 이 정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정말로 도움이 됐어."
 그럼 다행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츠카모토는 피식하고 웃어 보였다.
 "어~이, 츠카모토. 밥 먹자고."
 복도 끝에서 남자 부원이 팔랑 팔랑 이쪽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그는 손을 드는 것으로 거기에 응하곤, "그럼" 하고 그대로 건너편으로 달려 가버렸다.
 작아지는 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즈키는 거기에 서있었다.

 

 선라이즈 축제가 끝나고 취주악부는 본격적으로 대회를 목표로 내다보며 활동을 개시하고 있었다. A편성의 멤버를 오디션으로 결정한다고 타키가 말했을 때 교실에선 심한 소동이 빚어졌다. 하즈키는 구석 쪽에서 그것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A의 멤버라든지 전국이라든지, 자신에게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다. 그런 것은 잘하는 사람이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니까, 아오이가 퇴부하겠다고 말을 꺼냈을 때는 놀랐다. 아오이로 말하면 색소폰 파트에서는 그럭저럭 인망 있는 인물로 연주 기술도 뛰어났다.
 이 사람, 정말 부활동 그만둬 버리는 걸까. 아깝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더니 나가버린 아오이를 쫓아 부장과 쿠미코까지 교실을 떠났으니 놀랐다. 쿠미코는 도대체 뭐 하는 거야. 그렇게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아무래도 목소리로 나와버렸던 것 같다. 사파이어가 이쪽을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남은 부원들은 서로 마주보면서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웅성웅성 흔들리는 음악실 안의 공기를 일변시킨 것은 역시 부부장인 아스카였다. 그녀는 음악실 정면에 서더니 가볍게 박수를 쳤다. 그것으로 교실이 일시에 조용히 돌아간다. 모두의 시선이 아스카의 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타키가 감탄한 듯이 바라보고 있다.
 "자자~, 집중 집중. 모두 궁금한 것은 알겠지만 일단 오늘은 이만 해산. 1학년 교실에서 보호자를 위한 학교 설명회하고 있으니까, 오늘은 소리 내는 거 금지야. 내일부터는 오디션을 향해서 확실히 연습하도록 준비하라고."
 "네"
 3학년생들 중에는 불만을 가진 사람도 많을 텐데, 그래도 모두가 제대로 대답했다. 첫번째 수업 태도와는 딴판이다. 하즈키는 타키 쪽으로 시선을 보낸다. 역시, 여기까지 바뀐 것은 고문의 힘이 큰 것일까. 그는 아스카와와 무언가 이야기에 열중하더니 그대로 교실을 떠났다. 그 등이 조금 서두르는 것처럼도 보여서, 하즈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걸까.
 부장이 돌아오지 않은 채 오늘의 부활동은 해산됐다. 해산의 지시를 받았어도 아직 음악실은 술렁이고 있다. 아스카가 그대로 교실을 나가버렸기에 하즈키는 어쩔줄 몰라 사파이어 쪽을 보았다. 그녀는 생각에 열중하는 것처럼, 으응~하고 고개를 꺾고 있다.
 "쿠미코, 아오이 선배랑 사이 좋았었지. 분명."
 "응, 그러고 보면 선라이즈 축제의 훈련 때도 뭔가 이야기했었지"
 "그렇니까 뒤쫓아 간 걸까.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쪽이 좋을까."
 "언제 돌아올지 알 수도 없고 말야."
 시계를 힐끔 쳐다보고, 하즈키는 한숨을 토했다. 어쩌면 복잡한 얘기를 하는지도 모른다. 편지라도 남기고 돌아가야 할지, 기다려야 할 것인가.
"걔라면 오늘은 다른 애랑 돌아갈 테니 먼저 돌아가도 괜찮아."
 당돌하게 대화에 끼어든 목소리에, 하즈키는 당황했다. 보면, 말을 걸어 온 것은 트럼펫 파트의 코사카 레이나였다. 입학식에서 신입생 대표로 단상에 올랐으며 악기도 프로급으로 잘하는, 완벽미소녀라는 소문이다.
 "걔라니, 쿠미코?"
 사파이어의 물음에 레이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살짝 실눈을 뜨면서 음악실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좁은 문은 귀가하는 부원들로 붐볐다. 그 중에는 담소하고 있는 츠카모토의 모습도 보였다.
 "그래. 선약이 있는 거 같아"
 "그랬던 거구나. 고마워, 코사카."
 사파이어가 환하게 순수한 웃음을 띄운다. 레이나는 새침한 표정 그대로, 별로, 라고만 말했다. 긴 흑발이 살짝 흔들린다. 그녀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 사람이 있는 자리를 떠났다. 걸음 하나만 해도 왠지 위압감이 있다.
 "코사카는 좋은 사람이구나!"
 곁에 있던 사파이어가 천진 난만하게 말을 꺼낸다. 그럴까? 하고 하즈키는 뭔가 트집을 잡고 싶어졌다.
 "뭔가 무섭지 않나."
 "그렇지 않다니까. 절대 좋은 아이라고 생각해. 쿠미코의 친구고"
 "아아, 뭐, 응. 그럴지도.."
 순진한 눈동자에 응시받아, 하즈키는 내심으로 혀를 차고 싶어졌다. 사파이어가 있으면, 가끔 자신의 옹졸함이 까발려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 오늘은 일단 돌아갈까. 쿠미코한테는 내일 이야기 듣자."
 그렇게 말하고, 사파이어가 하즈키의 팔을 잡는다. 그것에 끌려가는 것처럼, 하즈키는 음악실을 떠났다.

통학로를 걷고 있던 중, 갑자기 사파이어가 역 앞의 벤치로 달려갔다. 그녀는 나무 벤치에 앉자, 부쩍 크게 기지개를 켠다. 감색 스커트로부터, 호리호리한 허벅지가 살짝 드러나 있다.
 "좀 이야기하고 돌아가자-."
 "에~"
 "괜찮잖아~, 빨리 돌아가도 지루한 걸."
 그러면서 사파이어는 흔들흔들 발을 흔든다. 할 수 없이 하즈키 또한 그 옆에 앉았다. 녹색의 전차가 당당하게 홈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하즈키는 가방으로부터 패트병을 꺼냈다. 오늘 아침 일부러 보리차를 따라 온 것이다.
 "저기, 하즈키,"
 차를 마시고 있으니, 묘하게 진지한 얼굴을 한 사파이어가 이쪽을 응시해 본다. 입이 막혀 있는 상황이라 하즈키는 시선만으로 답한다. 그녀는 한순간 주저하듯 입을 다물다가, 그로부터 뜻을 굳힌 듯 물었다.
 "하즈키, 좋아하는 사람 생겼지?"
 그 대사에 하즈키는 무심코 기침을 했다. 페트병이 손 안에서 당황한 것처럼 흔들리고 있다. 하즈키는 크고 깊게 호흡하는 것으로 간신히 기침을 억제하고, 천천히 사파이어에게 물었다.
 "뭐야, 갑자기"
 그녀는 살짝 흥분한 모습이었다. 뺨이 어슴푸레 붉어지고 있다.
 "왜냐면, 하즈키, 변했는걸. 거울에서 앞머리라든지 신경 쓰게 되었고."
 "그런 건 이전부터였고."
 "머리핀 같은 거도 귀여워졌고."
 "우연히 쇼핑에 갔을 때 샀을 뿐이라고. "
 "자주 6반 앞을 지나가고 있고"
 "그, 그건……그게, 6반 애한테 볼일이 있었을 뿐이라고."
 자신으로서도 괴로운 변명이었다. 사파이어가 노골적으로 수상하다는 듯 이쪽을 보고 있다.
 "그 친구라면 누우구?"
 "아~, 아니, 에 그러니까..."
 말문이 막힌 하즈키에게 사파이어가 어이 없다는 듯 한숨을 토했다.
 "정말, 거짓말을 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그 말에 하즈키는 입술을 삐죽 내민다.
 "그런 거, 사파이어가 심술 부리니까. 눈 감아 줘도 괜찮을텐데."
 "아! 사파이어라고 말했어! 안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뭐가, 이름으로 불렀을 뿐이잖아."
 "거짓말이다~. 지금 거 괴롭히는 거지!"
 사파이어는 그렇게 말하며 윙윙 발을 흔들었다. 반짝 반짝 빛나는 그 눈동자에선 강한 호기심을 느낀다. 이건 아무래도 덮고 넘어가 주지 않을 모양이다. 하즈키는 체념한 것처럼 숨을 뱉고는, 사파이어 쪽으로 마주 앉았다.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뭐 신경 쓰이는 사람이라면 있어."
 "에~ 거짓말! 누구?"
 "엣, 그것도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야?"
 "물론!"
 왠지 얼굴에서 불이 날 것 같다. 이런 화제, 얼른 끝내 버리고 싶다. 무심코 눈을 돌린 하즈키에게, 사파이어가 빙긋 하고 즐거운 듯 웃음을 띄운다.
 "희한하네, 하즈키가 수줍어하다니."
 "수줍지 않아, 바보."
 "바보 아닌걸. 아, 기다려. 내가 추리해볼 테니까."
 "추리라니……"
 어쩐지 완전히 놀아나고 있는 듯도 싶다. 사파이어는 끙끙 생각에 잠기더니 거기서 몹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고토 선배라든지."
 "그럴리 없잖아."
 "에~ 그럼 니시오카."
 "누구야 그 녀석."
 "하즈키 몰라? 2반의 도서 위원이야"
 "아니, 진짜 모르겠어. 오히려 왜 그 녀석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면 재미 있기 때문에!"
 너무나도 천진하게 그런 대답이 돌아와, 하즈키는 할 말을 잃었다. 애초에 연인에 관한 이야기에서, 사파이어에게 냉정한 대응을 구하는 편이 잘못됐는지도 모른다. 이대로 식어버릴 것 같으니 상대는 확실하게 숨기자. 그렇게 하즈키가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있는 옆에서, 사파이어가 "아,"라고 짧게 소리를 터뜨렸다.
 "저기, 쿠미코다. 아오이 선배와 이야기는 끝난 걸까 "
 그 말에 하즈키도 다시 얼굴을 든다. 그곳에 있던 것은 뭔가 즐거운 듯이 대화를 나누는 쿠미코와 츠카모토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이쪽에는 전혀 깨닫지 못한 모습으로 역의 홈으로 향하고 있다.
 "선객이란 건 츠카모토였구나."
 사파이어가 놀란 듯 말했다.
 "저 두 사람 사귀고 있는 걸까? 쿠미코도 너무하네, 전혀 그런 이야기 해주지 않았으면서."
 "……"
 "그나저나 츠카모토 키 크네. 전에는 그렇게까지 크지 않았던 느낌도 들지만, 자란 걸까."
 "……"
 "트럼본인가. 미도리도 한 번 부는 타입의 악기 하고 싶네."
 "……"
 "저기~, 하즈키?"
 짝짝 하고 사파이어가 뺨을 두들겨서야, 하즈키는 거기에서 정신이 들었다. 역으로부터 시선을 억지로 떼서 어떻게든 눈앞의 소녀 쪽을 향한다.
 "아, 미안. 못들었어."
 "에~!"
 사파이어는 어이 없다는 듯 한숨을 내뿜고, 거기서 뭔가가 떠올랐다는 것처럼 갑자기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았다. 원래부터 큰 눈동자가 더욱 크게 떠졌다. 갑작스런 행동에 하즈키가 놀라서 한순간 동안 몸을 젖혔다.
 "하즈키."
 사파이어는 달려들듯 하즈키의 어깨로 손을 놓고는, 꿀꺽 침을 삼킨다. 여느 때와는 다른 친구의 모습에, 하즈키 또한 긴장으로 숨을 삼킨다. 사파이어는 하즈키의 눈동자를 빤히 올려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하즈키의 신경 쓰이는 사람이라는 건……츠카모토야?"
 그 말에 하즈키는 몸을 굳혔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 반응이 답이었다.
 사파이어는 한 번 역으로 시선을 보내더니,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저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한 채, 그녀는 모호한 말을 자아낸다.
 "아, 그래던 건가. 응, 그건 그, 응. 그런가……"
 "그런 반응 멈추라고. 나도 지금의 지금까지 쿠미코가 츠카모토랑 사이 좋은지 몰랐으니까."
 "그, 그렇지."
 조금 전까지의 텐션은 어디로 갔는지, 사파이어는 묘하게 얌전해져서 이쪽을 돌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까 두 사람의 모습을 눈을 감고 떠올린 하즈키는 크게 한숨을 토했다. 그 두 사람, 뭔가 굉장히 친밀한 것 같았다. 적어도 그냥 친구라고 보기는 어렵다.
 노골적으로 다운된 이쪽의 반응을 보더니 사파이어가 돌연 주먹을 쥔다. 그녀는 힘차게 일어서더니, 하즈키 쪽으로 외쳤다.
 "안돼 하즈키! 풀이 죽는 것은 아직 일러."
 "빠르다든가 말해도 말야~ 그래도~"
 자신도 모르게 푸념조 비슷하게 되어 버린 하즈키에게 사파이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갈색을 띤 머리칼이 두둥실 흔들리고 있다.
 "파트 연습 때 쿠미코한테 물어보자고! 그, 아주 친한 친구일 뿐일지도 모르고 말야."
 그러면서 사파이어는 하즈키의 손을 꼭 쥐었다. 하즈키는 고개를 숙이면서도 그 손을 맞잡는다.
 "아~, 뭐, 그러네. 우연히 둘이서 돌아간 거 뿐일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즈키의 마음 속에서는 의심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같이 돌아가자는 약속을 하는 사이인데 단순한 친구일 리가 있을까. 그리고 만일 둘이 사귀고 있지 않았다고 해도, 쿠미코도 츠카모토를 좋아하고 있는 거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렇게 되었을 경우,
 "이것이 삼각 관계라는 녀석인가."
 이쪽의 사고를 읽어낸 것처럼 사파이어가 가만히 중얼거린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분한 것이었지만, 아주 약간은 호기심이 섞여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좋아하는 사람 (2)

 

 튜바라는 악기를 바라본다. 개구부는 매우 큰 나팔꽃처럼 생겨 있다. 금색의 표면에 복잡하게 이루어진 관 배치. 피스톤을 누르는 감촉은 다른 악기보다도 묵직하다. 벨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는 낮고 가끔 주위의 물건이 부르르르 진동한다. 솔로나 멜로디 같은 건 거의 없고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반드시 필요한 악기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아스카가 이곳에 악보를 전한다. 입부 직후의 무렵, 아스카는 이렇게 직접 초보자용 악보를 하즈키에게로 건내주고 있었다. 낮은 음 기호가 적힌 1장의 종이를, 하즈키는 조심조심 받는다. 세일러복 소매로부터 아스카의 호리호리한 손목이 보인다.
 "그런가요?"
 초심자인 하즈키에게 아스카는 여러가지를 일러 준다. 그녀의 긴 흑발이 어깨에서 스르르 흘러내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하즈키는 무의식 중에 악보의 끝을 꼭 쥐었다.
 "평소 하즈키가 의식하지 못할 뿐, 여러 곡에서 튜바는 활약하고 있어. 잘 잘 들어 보라고."
 "정말요?"
 "정말 정말."
 아스카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그 긴 손가락이 종이를 슬쩍 스치다.
 "트럼펫이나 트롬본, 확실히 눈에 띄는 악기는 활약이 알기 쉬워. 하지만, 악기라는 건 자신이 돋보이기 위해 부는 것이 아니니까 말야."
 "그럼 무엇 때문에 부는 건가요 "
 하즈키의 물음에 파트 리더는 쾌활하게 대답한다.
 "그야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지."
 그 말에 하즈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말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음악을 만들어요? 무슨 뜻이지요?"
 아스카는 웃었다.
 "그냥 그대로의 의미야. 여러 녀석이 여러 가지 악기를 사용해서 여러 가지 악보를 연주하고, 그렇게 하나의 음악이 생겨. 그건 굉장히 재밌다고 생각하지 않아? 악기를 분다는 건 그 커다란 결말을 구성하는 작은 톱니 바퀴가 되는 것이라고 나는 맘대로 생각하고 있지만 말야."
 "톱니바퀴..."
 그 단어에 하즈키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표정이 어둡워진 이쪽의 속마음 속을 알아차린 것일까, 아스카가 조용히 하즈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튜바는 튀지 않지만 중요한 톱니 바퀴야. 이 악기가 빠지면, 곡에 깊이가 없어지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타이르듯이 그 입술이 말을 자아낸다. 이것만은 기억해둬, 라고 그녀가 말했다.
 "눈에 띄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불필요하다는 것도 아니야. 오히려 의식하지 않으면 눈치챌 수 없는 것 같은 당연한 것이 의외로 중요하다거나 한 거라고."
 
 검은 아스팔트제의 도로가 오늘은 어째선지 아주 조금 더 넓게 느껴졌다. 아직 저녁 노을이 남은 하늘에 희부연 달이 감돌고 있다. 오늘의 회화를 떠올린 하즈키는 의미도 없이 자신의 손바닥을 불끈 쥔다. 입에서 새는 숨은 어느덧 근심을 띠고 있었다. 한숨으로 변한 그 숨결이 토해지는 것을 남의 일처럼 자신의 귀는 흘려듣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었네."
 옆을 걷고 있는 사파이어가 너무나도 순진한 미소를 이쪽으로 돌린다. 하즈키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피해, 그저 발밑에 펼쳐진 검은 지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쿠미코랑 츠카모토, 그저 소꿉친구였고. 삼각관계가 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휴식 시간 때 했던 쿠미코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그녀는 확실히 둘의 관계를 그렇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걸까. 정말 그녀는 츠카모토를 아무렇게도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하즈키, 신경 쓰이는 거야?"
 사파이어의 말에 하즈키는 무심코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큰 눈으로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의 진지함에 하즈키는 꿀꺽 숨을 삼켰다.
 "신경 쓴다니, 뭘."
 "쿠미코에 대해서."
 하즈키는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른채 그저 망연자실한 듯 사파이어 쪽을 바라본다. 그녀는 가만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마치 하즈키 자신도 모르는 감정을 끌어내려는 것처럼.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네."
 중얼거린 말은 하즈키의 본심이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그런 까다로운 이야기가 하즈키는 질색이다. 친한 친구 사이가 연애 때문에 순식간에 깨지는 꼴을, 하즈키는 그동안 몇번이나 봐왔다.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 여자친구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도, 그 남자와 사이좋게 지냈다. 하즈키에게 있어선 보잘것없는 이유여도 우정이라는 것은 간단히 결렬되는 것이다.
 하즈키는 쿠미코가 좋다. 좀 멍한 부분도, 아주 조금 사람이 너무 좋은 부분도, 모두 좋다. 만약 츠카모토와 쿠미코를 저울질한다면 하즈키는 틀림없이 후자를 택한다. 그래서,
 "만약 쿠미코가 츠카모토를 좋아한다면 나는 포기하는 쪽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
 그 말에 사파이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작은 손가락이 꽉 가방의 손잡이를 쥔다.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는듯 뺨을 부풀리고는 한 걸음만 하즈키 쪽으로 내딛었다. 갈색을 띤 눈동자에, 하즈키의 불안해보이는 얼굴이 비친다. 그녀는 위세 좋게 입을 열었다.
 "그거 쿠미코한테 실례 아닐까"
 예상 밖의 대사에 하즈키는 눈을 떴다. 사파이어는 아무래도 화가 났는지 그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다.
 "왜냐면 그건 단순히 쿠미코를 변명으로 삼는 것일 뿐인걸."
 "아니, 변명할 생각은 없지만"
 그러면서도, 바로 우물거리고 말았다. 이쪽의 얼굴을 들여다보려는 듯 사파이어가 쓱 가까이 온다.
 "하즈키는 쿠미코에게 신경을 써서 츠카모토를 포기한다고 말했지? 그런 거, 그저 자기 만족일 뿐이잖아. 만약 미도리가 쿠미코의 입장이라면, 친구에게 그런 취급 받는거 절대 싫어."
 사파이어가 여기까지 확실히 자기 뜻을 밝히는 일은 드물다. 맺히는 땀을 닦는듯 하즈키는 자신의 스커트에 손바닥을 비볐다. 사파이어는 말을 이었다.
 "애초에, 좋아하는 사람이 겹쳤다는 이유로 쿠미코가 하즈키를 싫어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미도리, 그거 쿠미코한테 무척 실례라고 생각해."
 "하지만 말야."
 "츠카모토를, 좋아하는 거잖아?"
 하즈키의 말을 가로막고 사파이어는 질문을 했다. 스트레이트한 그 질문에, 하즈키는 꿀꺽 침을 삼켰다. 사파이어는 눈을 피하지 않는다. 올곧은 시선이 하즈키를 찔러온다.
 "그렇다면 그걸로 됐잖아. 하즈키는 대체 뭘 신경 쓰는 거야? 미도리, 연애라든가 잘 모르지만, 하지만 다른 사람을 변명거리로 삼는 건 절대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그렇게 단숨에 마치고, 사파이어는 거기서 드디어 숨을 내쉬었다. 시선에서 벗어나 하즈키는 살짝 힘이 빠졌다. 자신의 입에서 크게 숨이 새는 것으로, 하즈키는 거기서 자신이 호흡을 멈췄던 것을 깨달았다.
 아까의 험악한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사파이어는 얼굴을 들자 방긋 하고 언제나처럼 웃어 보였다. 갈색을 띤 머리칼이 두둥실 흔들리고 있다. 그녀는 발꿈치를 들더니, 천천히 팔을 뻗었다. 당황하는 하즈키의 뺨을, 사파이어의 작은 손바닥이 감싼다.  착 하고 얼 빠진 소리가 났다.
 "괜찮아, 어떻게 되든 미도리가 같이 있어줄 테니까"
 그녀의 속눈썹이 부드럽게 떨린다. 그 손은 따뜻해서, 봄의 양지와도 같았다. 하즈키는 눈을 감고, 거기서 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고마워, 미도리."
 그 말에 그녀는 상냥하게 웃는다.
 
 축제에 그를 불러내자. 그렇게 결심하도록 하즈키의 등을 밀어준 것이 그때 사파이어의 말이었다. 노을에 물든 복도를, 하즈키는 달린다. 부활동 시간이 끝나고 부원들은 모두 다 악기실로 향하고 있다.
 시야에 그의 모습이 비친 순간 자신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화끈거리는 뺨을 감추려는듯 하즈키는 크게 숨을 빨아들인다.
 "아, 츠카모토!"
 츠카모토의 등 너머에는 레이나와 쿠미코의 모습도 보였다. 쿠미코의 표정은 이쪽에서는 그림자가 져서 잘 안 보인다. 다만 레이나의 팔을 잡은 그녀의 손가락에 꽉 힘이 들어간 것을 알수 있었다.
 "카토?"
 츠카모토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되돌아 본다. 짧게 잘린 머리칼로부터 그의 약간 큰 편인 귀가 엿보인다. 절대로까진 아니지만 정면에선 얼굴을 보지 못할 것 같다. 쾅쾅하고 날뛰는 심장을 기력으로 간신히 억누른 하즈키는 그에게 시선을 향하지 않은 채 그 팔을 잡았다.
 "잠깐 이야기가 있는데, 일로 와줘."
 "에? 하지만 지금 쿠미코랑 이야기하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조금 당황한 목소리가 떨어진다. 그래도 하즈키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무서웠던 것이다. 그 표정 속에 혐오의 감정을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쿠미코가 몸을 움직이는 기척이 들렸다.
 "난 괜찮아? 자, 갔다오라고."
 "가도 괜찮은 거야?"
 "괜찮다고 말하고 있잖아."
 그녀의 목소리는 밝아서, 평소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듯이 하즈키에게는 느껴졌다. 복도에서 들어오는 빛이 자신의 발등을 붉게 물들인다. 직선으로 자로 그은 것처럼 그림자와 햇볕의 경계가 뚜렷하게 갈라졌다. 그것을 딛고 넘듯이, 하즈키는 츠카모토의 팔을 끌었다. 그는 뭔가 말했지만, 하즈키는 그것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야기라니 뭐야?"
 츠카모토의 물음에 하즈키는 꾹 말문이 막혔다. 자신의 초조함을 지우려는 듯이 필사적으로 발을 움직인다.
 "아니, 여기서는 말할 수 없는걸."
 "그럼 어디서 얘기할 건데?"
 "으~응, 3층의 계단 앞이라든가. 저기라면 사람 없고."
 하즈키의 말에, 츠카모토는 잠자코 따랐다. 아마 그는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하즈키의 귀가 붉은 것이나 평정을 가장한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그래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하즈키는 오직 한결같이 걸어 나갔다.
 "오, 정말 사람 없구나."
 계단 앞까지 온 그는 조금 감탄한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입술에서 새는 한숨에는 희미하게 긴장한 느낌이 배어 있었다. 지금부터 무엇이 일어날지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버릇인 것일까, 조금 큰 바지에, 츠카모토는 자신의 손바닥을 계속 문지르고 있었다.
 하즈키는 잡고 있던 팔을 놓고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정신을 차리려는 듯 자신의 뺨을 양손으로 가볍게 두드린다. 갑작스런 행동에, 츠카모토는 놀란 모습으로 하즈키의 쪽을 봤다.
 "왜, 왜 그래?"
 "이야기가 있어요."
 진지한 표정으로 고백하는 하즈키에게, 츠카모토가 침을 삼키다. 살짝 돌출한 결후가 꿀꺽하고 오르내린다.
 "5일의 아가타 축제에, 저와 함께 가주지 않겠어요?"
 무서워서, 하즈키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단지 자신의 실내화를 응시한다. 그림자를 밟도록 해서, 하즈키는 거기에 서있다. 너무 세탁한 탓인지 감색 양말은 아주 조금 퇴색되어 보였다.
 "아~, 미안"
 조심스런 느낌으로 너무나도 조용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하즈키는 천천히 얼굴을 들어올렸다. 츠카모토는 조금 곤란해하는 모습으로 눈꼬리를 내렸다. 당황했는지, 그 시선이 둘 데를 모른채 허공을 헤메고 있다.
 "나, 축제에 갈 생각 없으니까"
 "어째서?"
 "어째서냐니……"
 하즈키의 물음에, 츠카모토는 불편한듯 우물거린다. 괴괴한 정적이 주위를 감돈다. 여름인데도, 복도는 조금 추웠다. 서늘한 공기가 하즈키의 목덜미를 쓰다듬는다
 "부탁해. 그 때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하즈키가 말했다. 츠카모토는 곤혹해하는 모양새로 고개를 흔든다. 상처 입지 않도록 그가 말을 고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래도, 나, 그런 거."
 "부탁이야."
 그 말을 가로막고 하즈키가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가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내뱉은 목소리는 몹시 절박한 울림을 내포하고 있었다. 츠카모토가 동요한 듯 눈동자를 흔든다. 그의 숨을 삼키는 소리가 인기척 없는 복도에 뚝 떨어졌다.
 "…… 알았어."
 그 말에, 하즈키는 무의식 중에 자신의 입가를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자신의 앞머리를 젖혀 하즈키는 의미도 없이 계속 눈을 깜빡인다.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아니, 별로 감사 받을 일은 하지 않았고."
 변명처럼 그렇게 말하며, 츠카모토는 이쪽으로부터 눈을 돌렸다. 그 표정은 결코 밝은 것은 아니었지만, 하즈키는 그래도 만족이었다.
 "당일은 역 앞에 7시 집합이야."
 그 말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즈키는 연애가 질색이다. 연애라든가 애정이라든가, 그런 경박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약한 것이 같은 상태를 지루하게 계속하는 것이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계속 품은 채, 이러니저러니 하며 있는 것이 싫다. 그러니까 빨리 결과를 알고 싶다. 그것이 설령 어떠한 것일지라도.
 "기다리게 했어?"
 "아니, 전혀"
 역에 도착하니, 츠카모토는 이미 그곳에 서있었다. 평소의 교복과 달리 오늘의 그는 파란 체크 셔츠와 검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빈말이라도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낙담하지도 않았다. 옷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낯선 스커트 자락을 손가락으로 당기면서 하즈키는 멋쩍음을 숨기는 듯 미소를 띤다.
 "나, 아가타에 남자랑 가는 거 처음이야."
 아가타 축제는 우지에선 유명한 고유의 축제였다. 아가타 신사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등은 축제에 맞춰서 수업이 일찍 끝나기도 한다. 초등학생 무렵부터 하즈키도 친구와 함께 자주 이 축제에 참가했다. 꽝제비만 잔뜩 뽑아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되어 버린 것은 좋은 추억이다.
 "나도 처음이야. 이런 거, 별로 익숙하지 않아서."
 긴장하고 있는지, 츠카모토의 표정은 평소보다 딱딱했다. 그를 만날 때까지 차라리 달아나고 싶을 만큼 심장이 아팠지만,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으면 만반의 태세를 취하고 있었던 자신이 왠지 바보같이 느껴지니까 신기하다. 평소대로 하면 되는 거다. 평소대로. 자신에게 타이르듯, 하즈키는 내심 같은 말을 반복한다.
 옆을 걷는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얼굴을 올려다보아도 그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다. 멍하니 그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갑자기 그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뭔가 먹고 싶은 거 있어?"
 "에, 아 통째절임, 이라든가."
 얼굴을 바라보던 것이 들킨 것일까. 동요한 탓인지, 대답한 목소리는 어미가 뒤집어져 있었다. 자신의 얼굴이 수치로 달아오르는 것에, 하즈키는 눈치채지 못한 척을 한다.
 "아~, 좋네. 나도 먹을까."
 츠카모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피식 웃었다.
 하즈키 일행은 사람들의 물결을 타고 그대로 포장 마차를 둘러봤다. 흐르는 물에 식힌 오이를 가리키며 하즈키는 말했다.
 "저거 사도 될까?"
 "물론"
 오이 통째절임은 교토의 축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물건이다. 평소에는 그다지 절임식품을 먹지 않는 하즈키지만 이 통째절임만은 예외였다.
 "저기요, 하나 주세요"
 "예이~"
 가게주인은 험상굳은 얼굴의 남자로, 하즈키는 약간 당황했다. 그는 츠카모토를 흘끗 보더니 호쾌한 웃음을 띄웠다.
 "남자친구씨는 안먹어? 특별히 커플 할인해도 괜찮은데."
 "아니아니, 커플이 아니라고요."
 가게주인의 말을, 츠카모토가 부드럽게 부인했다. 부풀어오른 고양감에, 푹 바늘이 찔린다. 하즈키는 억지 웃음을 가다듬으면서, 주인으로부터 통째절임를 받는다. 손잡이 부분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자네, 분위기 못읽는다고 자주 듣지 않아?"
 가게주인이 어이 없다는 듯 말했다. 그 대사에, 츠카모토는 쓴웃음을 지었을 뿐이었다.
 
 포장 마차가 늘어선 거리를 벗어나니, 순간에 사람의 왕래가 적어진다. 외등이 늘어선 밤길을 두 사람은 말 없이 걸었다. 솜사탕, 프랑크푸르트, 팥빙수. 방금 먹은 것들을 뇌 속에서 열거하면서 하즈키는 천천히 걸음을 나아간다. 츠카모토는 방금 산 베이비 카스텔라를 하나하나 먹고 있었다.
 "츠카모토 말야, 왜 축제에 가는 거 싫어 했어?"
 하즈키의 물음에, 츠카모토는 어물쩍 넘어가려는 듯 시선을 피했다.
 "아~, 아니……"
 "말하기 싫어?"
 "아니, 그렇진 않지만."
 츠카모토는 그리 말하면서 어깨를 움츠렸다. 흐~응, 하고 하즈키는 거기서 질문을 멈췄다. 길 건너편에서 즐거워하는 커플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을 흘려들으며 하즈키는 하얀 선을 더듬어가듯 걷는다. 일시정지. 도로에 새겨진 문자가 왠지 시야에 들어오다.
 갑자기, 츠카모토가 발걸음을 멈춘다. 그에 따르는 것처럼 하즈키 또한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강 건너 저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긴 생머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레이나와 쿠미코이다. 자신도 모르게 하즈키는 자기 손을 꽉 쥐었다. 그녀들은 어째선가 노점이 늘어선 거리와 무관한 데서 나타났다. 여기에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둘은 뭔가 유쾌한 모습으로 말하면서 역을 향하는 사람들의 흐름과 합류했다. 군중 속에 묻혀 곧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된다.
 "……츠카모토?"
 이름을 부르니 그는 깜짝 놀란 듯 이쪽을 향했다. 어물쩍 넘어가려는듯, 츠카모토는 웃는다.
 "아아, 미안. 좀 멍하게 있었다."
 그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가. 그런 거 생각하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쿠미코가 신경 쓰여?"
 그 질문에, 츠카모토는 분명히 동요했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하즈키는 가만히 응시한다.
 "별로 그런 게 아냐."
 그는 그러면서 베이비 카스텔라를 입에 쑤셔넣는다. 무언가에 재촉당하듯 츠카모토는 카스텔라를 음미했다. 하즈키는 침을 삼킨 후, 그의 쪽을 보았다. 진지해진 태도에, 츠카모토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나 말야, 네가 좋은데."
 그렇게 말한 순간, 츠카모토는 심하게 콜록거린다. 당황한 것처럼 패트병 뚜껑을 열고는 단숨에 그것을 마신다. 그가 다시금 가라앉는 것을 하즈키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응. 아니, 오우."
 혼란이 가라앉지 않는지, 요령부득인 그 반응에 하즈키는 볼을 부풀렸다.
 "뭐야 그 반응."
 "아니, 깜짝 놀라서."
 "사실은 알고 있었던 주제에."
 하즈키의 말에, 츠카모토는 조금 어색한 듯이 자신의 머리를 긁었다.
 "아니, 그럴지도 모르겠다고는 생각했지만, 하지만 착각한 거라면 굉장히 창피한 일이라고도 생각해서~"
 "그래서, 대답은?"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하즈키는 말했다. 솔직히, 더 이상 두근두근거리고 채로 있는 것은 고통이었다. 이쪽의 심정을 헤아린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츠카모토가 살짝 눈을 가늘게 한다. 조용히, 그는 숨을 들이쉰다. 입술에서 뿜어져 나오는 목소리가 여름의 공기를 흔들었다.
 "……미안"
 그 말을 들은 순간, 왠지 온몸의 힘이 빠졌다. 낙담과 안도감이 뒤섞인 감정이, 한숨 속에 녹아들어 간다. 그런가, 하고 하즈키는 말했다. 자신으로서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결과를 기다리는 고통에서 자신이 해방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가워진 손가락 끝을 하즈키는 꼬옥 움켜쥐었다. 그러고 보면, 사파이어의 손은 언제나 따뜻했다. 문득 그런 것이 생각났다.
 "하나 물어도 돼?"
 가까스로 뽑아낸 목소리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 이상으로 평소 그대로였다. 뭐야, 의외로 태연하잖아. 그렇게 생각했다.
 "뭐?"
 츠카모토가 배려해주는 듯한 눈으로 이쪽을 본다. 저런 눈은 싫다. 그의 이런 얼굴은 별로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내가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처음에 거절한 건, 쿠미코가 이유?"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사실대로 말해줘. 모처럼 내가 용기를 내서 묻고 있는 거니까."
 그 말에, 츠카모토가 쓴웃음을 입꼬리에 드러냈다. 어깨를 움츠려, 포기했다는 듯 그는 말했다.
 "그게 말야, 별로 내키지 않잖아. 축제 같이 가자고 꼬셔 놓고 다른 여자랑 가면."
 그 날, 역시 그는 쿠미코에게 축제에 같이 가자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승낙하지 않았다. 같이 집에 돌아갈 정도의 사이인데 왜 거절한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한 국면에서 하즈키는 깨달았다. 쿠미코는, 하즈키를 신경써준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하즈키의 마음 속에 쓰디쓴 감정이 복받쳤다.
 "바보구나."
 새어나온 목소리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자신일까, 그 아이일까, 아니면 눈앞의 소년일까? 츠카모토는 부끄러움을 감추려는듯 다시 카스텔라를 입으로 옮겼다. 피하는 시선을 놓아주지 않는듯, 하즈키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츠카모토, 쿠미코를 좋아하는 거지."
 돌연히, 그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너무나도 알기 쉬운 반응에 하즈키는 그만 뿜어 버린다. 그는 당황한 모습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라고. 그 녀석은 별로 그런 게 아니라고."
 "아~, 혹시 자각하지 못했다는 거?"
 "아니 정말 다르니까."
 "응 응, 솔직해지라고."
 여유 부리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자, 츠카모토는 불복하는 듯한 얼굴인 채 조용해졌다. 혹시 자각이 없었던 것일까, 그렇게 노골적인 태도를 드러냈었는데도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문득 하즈키는 입부 때의 아스카가 해준 말을 떠올렸다.
─오히려 의식하지 않으면 눈치챌 수 없는 것 같은 당연한 것이 의외로 중요하다거나 한 거라고.
 어쩌면, 츠카모토와 쿠미코는 서로 너무나 가까운 존재인 것인지도 모른다. 함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보통이라서, 서로에게 지닌 감정에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소꿉친구라는 건 귀찮은 관계다, 라고 하즈키는 다소 김빠진 기분으로 생각했다.
 "안된다고, 츠카모토. 쿠미코는 둔감하니까. 적극적으로 나가지 않으면."
 "그런 거 알고 있어. 같이 지낸지 오래 되었으니까."
 반사적으로 대답한 것일 터이다. 그는 자신이 한 말에 거북해하는 듯한 얼굴을 했다. 풀이 죽은 듯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어쩐지 너무 웃겨서, 치미는 웃음을 감추지도 않는 채 하즈키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츠카모토가 점점 얼굴을 붉힌다. 웃겨서 어쩔줄을 모르겠는데, 울고 싶은 것은 어째서일까. 하즈키는 눈에 스며든 눈물을 닦아 내고는, 시원스레 말했다.
 "뭐, 쿠미코는 내 소중한 친구니까요. 둘이 달라붙도록 협력하는 거야."
 그 때, 기운을 다 써버렸던 것일까. 중얼거린 목소리가 츠카모토에겐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에? 하고 그가 이상하게 여긴 듯 목을 꺾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면서 하즈키는 웃어 보였다. 그 소리에 끌린 것처럼, 츠카모토 또한 웃었다. 밤공기에 두 사람의 웃음 소리가 녹아든다. 그것은 너무나도 지어낸 듯한 느낌의 것이었지만, 둘 다 서로를 지적하려고는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