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16. 17:28ㆍ이야기들/애니메이션 이야기
이전에 '타코츠보야'라는 이가 그린 케이온 관련 동인지 '도벽여고생 경음부'가 살짝 화제가 되었던 때가 있다. 사람들에게 있어 평화로운 작품으로 유명한 케이온을 살짝 비틀어 충격저인 밑바닥 인생 이야기로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사실 동인지가 기존작품을 비꼬아서 망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들이 많아 별 화제가 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동인지의 경우는 밴드를 지향하는 이들에게 있어 현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들내면서 말 그대로 '있을 법한 허구'를 집어넣어 원작을 비꼬고 있는 것이다.
동인지 내의 설정은 원작과 약간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유이를 대단한 천재로 가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했다는 점이다. 허나 유이가 천재라는 점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이 동인지 내 경음부의 히로인들은 모두 몸쓸 꼴을 당할 뿐 아니라, 그 인간관계조차도 조각조각 흩어지고 마는 비극을 맞고만다.
우선 유이는 무리하게 비싼 기타를 사다가 앙심을 품은 점원으로 인해 도둑질로 오해받은 끝에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가게 관리인에게 순결을 주게 되고, 미오는 유이의 천재적인 재능에 따라가지 못하자 그녀를 시기하여 앙심을 품게 된다. 리츠는 일순 가장 평범해보이지만, 그렇기에 이기적인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태어났을 때부터 부자였던 무기는 그대로 부자의 여유로운 인생을 보내고, 유일하게 음악인으로서 유이를 동경했던 아즈사는 유이를 쫓기위해 밑바닥 인생을 살아간다.
그 최후는 더욱 비극적인데 유이는 마약에 손을 대기도 했다가 몸을 망쳐 결국 요절하고 만다. 허나 친구의 죽음에도 무기는 별 모습도 비추지 않았으며 미오와 리츠는 그 사건을 그저 이야깃거리로 삼을 뿐이다. 리츠는 변변한 직장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당장 사는 것에 급급한 프리터 인생을 살고 있으며, 미오는 대학졸업 후 좋은 회사에 취직했으나 유부남과 불륜 끝에 버림받아 히키코모리가 된 상태다. 그리고 유이를 동경해 가장 불행한 밑바닥에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던 아즈사는, 완전히 절망하고 만다.
이렇듯 암울한 이야기이지만 의외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면서 인기를 얻어 이 동이지는 이후로도 2권이나 더 애프터 스토리가 나오게 된다. 이 애프터 스토리는 후속편이라기보다는 주요캐릭터들을 통한 시점변환을 통해 이야기의 진상을 밝히는 기법으로 그려진 것이며 이에 따라 암울한 경음부 일원들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동 작가의 2번째 케이온 관련 동인지는 '레퀴엠5 어 드림'이라는 제목으로 C77작품으로 공개되었으며 여전히 적나라하게 암울한 이야기를 그린다. 이야기의 결론, 즉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었던 경음부 일행이었지만 실제로 음악으로 성공한 사람은 유이밖에 없었고, 그외에는 모두 실패하고 패배자가 된다는 어찌보면 극히 현실적이 결과는 벼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경우 전작의 커다란 이야기를 미오의 시점에서 주로 서술하고 있으며 미오가 걸아갔던 길과 그녀가 새로이 맞게되는 인생을 그리며 끝난다. 여기서 미오는, 히키코모리가 된 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한 재능에 좌절하고 모든 자신감을 상실했다가 일찍감치 음악을 포기하고 살아가던 소꿉친구 리츠의 도움으로 같이 프리터인생을 걸어가게 되는 비극을 그린다. 그래도 전작보다는 구원이 보이기도 한다는 점에서 약간 독자들로 하여금 안도감을 주는 부분이 있으나, 인생을 망치고 자신이 원한 것과는 다른 생을 걸어가야한다는 점에서 그 비애는 이루 말할 데가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인터넷에선 상당한 반향을 불러왔으며 덕분에 다시 후속편, 즉 아즈사의 시점에서 다시금 이야기를 바라보며 끝맺는 마지막 애프터 스토리가 그려졌고, 최근 C78에 드디어 공개되었다.
최근에 공개된 'That is It!'은 그간의 동인지를 끝맺는다는 점, 그리고 작중에서 유이를 동경해 다른 부원과는 달리 변함없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유이를 따라가려 했던 아즈사를 그린다. 동시에 유이와 우이의 관계를 좀 더 밝혀주며 유이의 천재성과 그 결말에 대해 진상을 보여준다.
유이는 너무나도 천재였고 그것을 발견한 사와는, 유이를 예능계로 진출하게끔 도와준다. 그러나 다른 부원들에게는 결코 그러지 못했다. 이러한 진로의 차이는 경음부일행의 인간관계가 부서지는 첫번째 계기가 되어, 리츠와 미오는 유이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지게 된다. 무기 역시 영국으로 시집을 가 음악을 관두었고, 경음부의 소속을 계속 지니고 있는 것은 유이를 제외하면 오직 아즈사뿐이다. 여기서 이미 비극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즈사는 자신과 마음이 통하는 아즈사와 교류하면서 유이를 쫓으려 열심히 음악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계속해서 멀어져가는 유이를 보며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실감한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꿈을 쫓는다. 그럴 수록 자신에게 남은 인생의 시간은 사라져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허나 어떻게든 별 볼 일 없는 그룹으로 프로데뷔까지 했던 아즈사였지만 결과는 리더와의 불화로 그룹을 탈퇴, 거기에 그 상대가 부른 불량배들에 의해 순결까지 잃고 마는 최악의 상황을 겪게된다.
아즈사는 거기서 자신의 꿈을 포기할까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다시 일어선다. 이번에는 아키바계 아이돌로 활약하며 밑바닥 인생에서 위로 올라가고자 쉴새없이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은 모래늪처럼 발버둥치는 이를 더욱 아래로 빠뜨릴 뿐이었다. 발악하는 하류인생들을 비웃는데 급급한 매스미디어들, 그리고 어차피 그런 것을 이해하지 않는 기성사회 등 아즈사에게 오는 것은 그저 암울한 현실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서, 아즈사는 유이의 사망소식을 접하며 완전히 절망해 자신의 꿈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유이가 마약을 했던 것은 단지 예능계의 아는 사람이 준 것을 잘 모른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일어난 것이었다. 다행히 그런 점이 정상참작되어 그녀는 형사처벌을 면하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그녀의 건강은 극도로 망가진 상태였고 때문에 엄청난 약을 복용하며 작곡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복용하는 약이 너무 많은 나머지, 그녀는 약들을 실수로 잘못 복용한 탓에 쓰러져 다시 일어나려 30분동안 안간힘을 쓴 끝에 요절하고 만다. 마지막에 유이는 우이에게 작별인사를 독백했다. 작중에서 유일하게 유이의 이해자로 존재했던 것은 우이 뿐이었던 것이다.
우이 역시 평탄한 삶을 살진 못한다. 언니를 잃은 그녀는 괜찮은 남자와 결혼했으나 가정폭력을 당한 뒤 이혼수속을 밟는 사황이 된다. 그나마 유이가 남긴 작품들 덕에 우이와 그 부모님들은 저작권 관련으로 재산면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위안일 것이다. 한편, 아즈사는 음악인의 꿈을 접고 음악레코드판매점에서 아르바이트 점원으로 일하며 가끔씩 거리에서 연주를 하는 것으로 새 인생을 시작한다. 비록 자신이 하고싶었던 꿈은 잃어버렸지만, 실패한 인생을 살았지만, 그래도 인생자체는 음악을 가지고 보잘 것 없는 조금 못난 보통의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서 경음부의 모두가 음악으로부터 모두 등을 돌리며 사라져간다. 의욕이 있었어도, 극히 일부만이 성공하고 나머지는 그저 헛된 삶의 파편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마지막에 한가지 메시지를 인용한다.
비록 자신이 원하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진로에 나아가진 못했어도, 그에 비견할 바는 아니더라도 그와 관련된 평범한 일에서 조금씩이나마 즐거움을 얻는 것 역시 아주 조금은, 가치가 있지 않은가 하는 점 말이다.
즉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는 없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자신의 본래 꿈을 잃어버리고 추락하거나 적당히 타협해버리지만, 적어도 조그만 부분에서의 일시적인 즐거움, 휴식이 조금이나마 있기에 그나마 그런 삶을 견디며 자신의 꿈을 흔적으로나마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덧붙여서 동인지의 3부, 즉 아즈사의 이야기는, 비록 부조리하고 비극적인 좌절을 결말로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상에서 인간이 자신의 온 힘을 다해 하고자 하는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의지를 불태우는 나름대로 고결한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비극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아즈사의 그 노력은 철저하게 하류인생으로 일그러져버리지만 그럼에도 독자는 이 캐릭터를 단순히 바보라고 해야할 것인가 망설일 수밖에 없다. 비극이란 이러한 미묘한 매력 위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즈사의 일화를 그린 3부가 '비극'으로서 가장 잘 그린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